[특파원 칼럼/이헌진]덩샤오핑의 원숭이, 시진핑의 호랑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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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중국의 대대적인 치안 캠페인인 ‘옌다(嚴打)’는 가혹했다. ‘매우 쳐라’로 번역되는 옌다는 1983년 8월에 등장했다. 이듬해 여름까지 중국 전역에서 1만 명 이상이 처형당하고 많은 사람이 노동개조소로 향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의 문을 연 지 5년. 발전은 눈부셨지만 부작용도 컸다. 느슨한 사회분위기 속에 온갖 사건사고가 잇따랐다. 폭탄테러, 여객기 납치, 연쇄살인 등 중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한두 번 발생한 게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덩샤오핑이 꺼내든 옌다는 탈도 많았지만 이 덕분에 중국 사회는 제정신을 차리고 경제는 비약적인 도약을 이어간다.

30년 뒤인 올해 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파리부터 호랑이까지 때려잡겠다”고 공언했다. “부패척결에 당과 국가의 존망이 걸렸다”는 위기위식 속에서 나왔다. 호랑이는 부패의 몸통, 파리는 깃털을 말한다. 이후 사정의 칼바람이 불었다. 관영언론은 시 주석 집권 이래 차관급(부부장급) 이상의 ‘호랑이’ 9명을 처벌하는 등 사상 최고 강도의 부패척결이 진행 중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여론의 호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다. 몸통은 내버려두고 깃털만 건드린다는 세간의 오랜 불만은 바뀌지 않았다. 특히 지난달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와 고위 공직자의 자제)인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 시 서기에 대한 재판은 이런 냉소를 더욱 키웠다. 아내의 살인과 충신의 배신, 중난하이(中南海) 권력암투, 거대한 부패사슬 등 1년 가까이 진행되던 흥미진진한 대하드라마가 법정에서 치정 스토리로 바뀌었다. “그럼 그렇지. 어떻게 태자당을 건드려”라는 소리가 나온다.

덩샤오핑의 옌다는 성역이 없었다. 그해 10월 인민해방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주더(朱德)의 손자 주궈화(朱國華)가 톈진(天津)에서 처형당했다.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화국 10대 원수 중 첫 번째로 꼽히는 명장의 핏줄도 옌다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성폭행과 절도행각을 일삼았다는 이유다. 덩샤오핑의 결심 없이는 불가능했던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원숭이 앞에서 닭 목을 쳤다(殺鷄給후子看)”고 말한다. 훗날 덩샤오핑도 쓴 표현이다.

시 주석도 성역 없는 부패 척결을 외쳐왔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국영기업의 대표 격인 ‘중국석유’에 대한 대대적 조사는 주목된다. 중국석유는 석유방(석유와 관련한 정부와 산업계 인맥)의 요람이자 무엇보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법위원회 서기의 텃밭이다. 석유방은 중국 양대 권력파벌 중 하나인 상하이방(상하이 출신 관료그룹)의 돈줄로 알려져 왔다.

로이터통신이 올해 3월 개설한 중국의 정치인맥 지도 ‘커넥티드차이나’에 따르면 저우 전 서기의 핵심 인맥은 8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이 체포됐고 1명은 체포설이 나돈다. 저우 전 서기의 비서 등을 지냈던 부부장급 이상 고위직과 보 전 충칭 시 서기다.

남은 2명이 바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상무위원이다. 장 전 주석의 막강한 영향력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쩡 전 상무위원은 오늘의 시 주석을 있게 한 거물이다. 게다가 저우 전 서기는 최근 5년 동안 공안 무장경찰 검찰 법원을 총괄했고 상무위원으로 시 주석과 함께 중국 최고의 의사결정을 해왔다. 정치적 동란을 제외하고 전현직 상무위원이 처벌된 전례는 없다. 저우 전 서기 조사설의 진위를 두고 엇갈린 시그널이 이어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시 주석의 부패 척결이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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