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문·이과 프레임 깰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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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테크놀로지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애플의 DNA입니다. 인문학과 결합된 테크놀로지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했던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 사랑은 유별났다. 리드대에 다닐 때 수강한 서체(書體) 과목이 매킨토시 서체 개발에 영감을 준 일은 유명하다. 버튼이 하나뿐인 단순한 디자인의 스마트폰은 그가 한때 선(禪) 사상에 빠졌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에게 인문학은 혁신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느낌이다. 인문학이란 성찰과 비판의 학문인데 그는 인문학을 자기 수양의 자양분으로 삼지 못했다.

잡스가 인문학을 내면화하지 못했다 해도 기술혁신의 바탕에 인문학을 두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추격형 경제에서 창조형 경제로 전환을 꿈꾸는 우리나라에 필요한 인재상(像)이 잡스라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잡스 같은 인재를 길러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로 첫손에 꼽히는 것이 문·이과 분리 교육이다. 융합형 교육을 주창한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부부는 문학 수학 과학 역사 음악 미술 등 과목을 철저하게 분리시켜 학생에게 가르치는 오늘날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며 “현대사회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암흑기를 맞고 있다”고 말한다.

문·이과 분리의 기원은 일본이다. 개화기 일본이 대학을 세울 때 근대화의 필요에 따라 교양교육이 아니라 전공지식 습득에 무게를 두었다. 대학을 나온 전문가들은 근대화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부흥의 주역이 되었으나 나중엔 ‘창의성 부족’이라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근본원인이 문·이과 분리에 있다는 반성이 나오는 이유다.

문·이과 분리 전통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식되었다. 대학들이 전공별로 학생을 모집하게 되자 고등학교도 입시제도에 맞춰 문·이과 분리 교육을 하게 된다. 일찌감치 심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문·이과 분리의 장점이 없지 않지만 삶의 목표와 적성이 뚜렷하지도 않은 아이들을 억지로 제도에 맞추는 폐해가 생겼다. 두부모 자르듯 적성이 뚜렷한 아이들도 있지만 더 많은 아이들이 그 경계선상에 놓여 있거나 문·이과를 나누지 않아도 되는 분야에 속해 있다. 이 아이들을 기존 프레임에 밀어 넣는 것은 개인 두뇌의 낭비이고 국가 경쟁력의 잠식이다.

수십 년에 걸친 이런 교육은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심각한 단절을 낳았다. 과학자이자 작가인 찰스 퍼시 스노는 1950년대에 벌써 분리 교육이 가져온 심각한 폐해를 알아차렸다. 그는 “과학자는 셰익스피어를 모르고, 인문학자는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하지 못한다”며 둘 사이의 심각한 간극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추격형 경제에서는 문·이과 분리체제가 배출한 전문 직업인이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날마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이 쏟아지고 지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지는 시대에 자기 분야만 파는 공부는 별 의미가 없다. 전통 지식이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새로운 지식혁명과 부가가치는 각기 다른 것을 섞는 ‘융합’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융합형 교육과정 도입을 검토했는데 정작 지난달 입시 제도를 발표할 때 문·이과 분리체제를 유지할 뜻을 비쳤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부담스러운 교사와 학습 부담 증가를 우려하는 학부모의 반발을 의식했을 것이다. 창조경제를 하려면 창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부터 길러내야 하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그 베이스캠프가 되는 교육 과정을 손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제도를 만든 교육 관료들 역시 창의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문·이과 분리 교육의 희생자라서 그런 걸까.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문과#이과#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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