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정치인의 DNA, 거친 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2003년 6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상배 의원은 당내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외교는 한국 외교사의 치욕 중 하나로 ‘등신외교’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취재기자조차 귀를 의심했다. 민주당은 즉각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했다. 이 의원의 사과로 국회는 다음 날 정상화됐지만 ‘막말 본색’이 어디 가겠나. 그로부터 두 달여 뒤 한나라당 김병호, 박주천 의원은 난센스 퀴즈를 냈다. 노 대통령과 개구리의 공통점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시도 때도 없이 짖는다’에 이어 ‘생긴 게 똑같다’.

▷10년이 흐른 지금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귀태(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홍익표 의원)’ ‘바뀐 애(박 대통령을 비꼬는 말·정청래 의원)’ ‘당신(이해찬 의원)’, 그리고 ‘그년(이종걸 의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런 한결같음을 정치권의 ‘미덕(美德)’이라고 해야 하나.

▷정치인의 막말은 선거 판도도 바꿔놓았다. 1998년 지방선거에선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을 많이 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는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말이, 지난해 총선에선 “라이스(전 미국 국무장관)를 강간해서 죽이자”는 ‘나꼼수’ 김용민 민주당 후보의 말이 상대편 지지자를 투표소로 이끌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세 치 혀’를 주체 못하니 인간의 뇌 중 정치인의 뇌가 가장 비싸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비싼 이유는 거의 쓰질 않아서란다.

▷동아일보가 19대 국회 회의록을 분석해 막말 의원을 꼽아 보니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1위에 올랐다. 주로 상대를 ‘당신’이라고 하대(下待)하며 반말을 많이 했다. 앞으로 의원끼리 ‘존경하는 ○○○ 의원님’이라는 빈말 대신 ‘당신’이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당신이란 호칭을 용인하면 막말 건수라도 줄지 않겠나.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잡아보는 세상이라지만 막말은 더 거친 막말을 부를 뿐이다. 누에가 자신의 입에서 나온 실로 집을 짓고 살듯 사람도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로 자신의 인생을 경영한다는 말이 있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막말#정치인#민주당#선거#서영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