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성하]‘조선중앙통신용’ 성명에 숨겨진 의미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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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북한이 성명이나 담화를 발표하면 흔히 남쪽에선 어떤 기관 명의로 발표됐느냐를 많이 따지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떤 매체를 통해 발표했느냐다. 대형 포털사이트를 통해 통신사 기사가 신속하게 서비스되는 한국과는 달리 조선중앙통신 기사는 북한 내 일반 주민은 접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이 통신사만을 활용해 발표하는 것은 자기들의 불만을 내부가 아닌 외부에만 알리고 싶을 때 주로 활용한다.

북한이 1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문답 형식으로 북측의 입장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조평통 대변인은 북핵 불용과 북한 체제 변화를 촉구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발언이 “우리 존엄과 체제를 심히 모욕하는 도발적 망발”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주민들에게까지 알렸는지는 조선중앙방송과 노동신문을 살펴봐야 알 수 있다. 북한이 통신사만 활용했다면 이는 한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북한 체제와 핵을 논의했다는 사실을 내부엔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칫 “최대 우방인 중국까지 한국과 짝짜꿍하는 것을 보니 우리의 앞길이 더 절망적일 것”이라는 민심만 부추길 수 있다. 더구나 집권 2년차인 김정은은 아직 중국에 못 갔는데, 집권 반년차인 박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주민에게 알리기엔 자존심이 상할지 모른다.

북한은 지난달 27일에도 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최고 존엄에 대한 우롱이고 대화상대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라며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비난했다. 이것도 사실 주민들에게까지 알리긴 좀 부적절한 게 틀림없다. 북한 주민은 이런 보도를 접하면 “도대체 어떤 대화를 나눴기에 최고 존엄이 우롱당할 수 있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십상이다. 그러면 절대 말실수 따윈 하지 않는 존재로 선전해온 최고 존엄의 권위가 그 자체로 훼손된다.

반면 TV나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하는 것은 그 내용의 절반쯤은 북한 주민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달 19일 발표한 인민보안부 특별담화가 대표적이다. 상영되던 영화까지 이례적으로 중단하고 “공화국을 헐뜯는 탈북자들을 물리적으로 없애버릴 조치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해 극적 효과까지 높였다. 이는 “남조선까지 찾아가 없애버릴 정도이니 내부에서 이런 정보를 흘려주는 자들은 가문의 멸족을 각오하라”는 메시지라 볼 수 있다.

북한이 불만을 외부로 향해서만 터뜨렸을 경우엔 향후 상황에 따라 태도 변화가 비교적 유연해질 수 있다. 하지만 주민에게 ‘말빚’을 진 사안은 정부의 공신력과 위신, 나아가 요즘 아주 민감해 마지않는 최고 존엄의 권위가 걸려 있어 쉽게 얼버무리기 힘들다.

한국 언론도 앞으로 북한의 이런 발표를 ‘대외용’과 ‘대내외용’으로 구분해 명확히 이해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조선중앙통신용#북한#핵#북한 체제#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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