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병종]문화전사 조창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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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지금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 전시실에서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전시회 하나가 열리고 있다. 21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회의 이름은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 조창수’.

생소했던 이름의 이 여성에 관한 전시회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홀로 전시회의 이름을 ‘문화전사 조창수’라고 바꿔 되뇌어 봤다. 말하자면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로부터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반환받은 박병선 선생이나, 약탈당한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을 위해 분투해온 도쿄 고려박물관의 이소령 여사와 같은 계열의 인물인 셈이다. 전 생애를 바치다시피 하여 우리 문화재 반환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삶의 족적이 몇 장의 흑백사진과 일기, 그리고 소박한 유품들 속에 묻어 있었다.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녀는 말하자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원 없이 공부한 신여성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될 수 있었지만 그 삶의 족적은 결코 녹록지 않았는데, 어찌 보면 이것은 순전히 그녀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일본 여자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고 그 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민속학으로 석사를 마치면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데 이 기간에 그녀는 미국으로 불법 반입된 고종과 순종의 옥새 등 100점에 가까운 국보급 문화재를 찾아내 모국의 국립박물관에 반환시키는 등 우리 문화재 발굴과 반환에 생애를 불태우다시피 했다. 박물관에 재직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민속 등을 알리는 스무 권 넘는 책을 썼고, 2007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서는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병선 선생 역시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분관 폐지창고에 버려지다시피 했던 의궤를 비롯해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반환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마침내 이 문서들이 145년여 세월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한 후 눈을 감았다.

조창수 여사 또한 대한제국 때 제작된 고종과 순종의 황제 어보(御寶)와 명성황후 옥보 및 그 외의 왕실 보인과 국보급 문화재들의 발굴과 반환을 위해 진력하다가 평생의 소원이었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한 후 서울에 돌아와 외아들인 에릭 스완슨(서울 힐튼호텔 총지배인)의 품에서 84세로 영면하게 된다. 아들은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그녀의 소중한 문헌자료 357권을 전시회와 함께 서강대에 기증했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 황제어보를 제작해 국가의 독립과 자존을 알리고 싶었던 고종과 순종의 마음, 그리고 비명에 간 명성황후의 구천에 떠돌았을 원혼을 위로하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했던 그녀 또한 가진 모든 것을 바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한 줌 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시회의 벽면 한쪽에는 그녀의 남동생인 조창호 중위에 대한 일대기가 역시 희미한 흑백사진 속에 기록으로 남겨져 있어 이채로웠다. 조창호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6·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갔다가 40여 년 만인 1994년에 탈출한 국군포로로 기억된다. 그는 같은 해 1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중위로 전역식을 갖고 43년 3개월이라는 최장기 군 생활을 마감했다. 꽃다운 나이에 헤어져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과 북한에 헤어져 살던 오누이는 서울에서의 짧은 해후 끝에 각각 유명을 달리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벽면 또 다른 한쪽에 붙어 있는 시 ‘우리도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도 유난히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시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한국관 개관을 위해 미국 교민들이 힘을 모을 때 그곳의 한 시인이 썼다고 한다.

‘(…)눈바람 씻기운 광개토왕비/반짝이는 신라의 정교한 금관/은은한 고려청자/소박한 이조 백자에서/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찾습니다/이 세상의 누군가 우리들만큼 한국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몇 년을 여기 더 살아도 우리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우리들 아들딸들이 태어나 여기 살아도 그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당신은 어디서 왔나요?”라고 물으면/코리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모두 한국인입니다/만국민 모여 사는 이 북미 대륙에 우리도 당당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반만년 한국예술을 지켜야 합니다/우리는 한국예술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밖에) 나가 살다보면’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이역만리에서 문화재를 만났을 때 그것은 바로 나와 내 조상을 만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들을 고이 지켜 고국에 돌려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야말로 전선에 나가 총 들고 싸우는 전사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6월이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시기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교수
#자랑스러운 한국의 딸 조창수#문화재 반환#서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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