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정에서 가려야 할 원세훈의 ‘선거법 위반’ 혐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5일 03시 00분


검찰은 어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국가정보원법의 정치관여 금지 의무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원 씨는 국정원 직원들에게 “종북 좌파들이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금년에 확실히 대응하지 않으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면서 “종북 좌파 세력이 국회에 다수 진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원 씨의 이런 언급이 국정원 직원의 선거 개입을 유도했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이 상대해야 할 종북 좌파는 북한과 연계해 남한의 국가 체제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는 세력에 국한되어야 한다. 원 씨는 2012년 2월 국정원의 심리전단 사이버 팀원을 70여 명으로 확대하고 수백 개의 아이디(ID)를 이용해 웹사이트에서 의견을 개진하도록 했다. 드러난 것만 해도 게시글 5179건, 찬반 클릭 5174건이다. 이 가운데 많은 글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 성과를 홍보하거나 동조하는 것이었다. 원 씨가 거론한 ‘종북 좌파’의 개념은 너무 포괄적이어서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 개입을 유도했을 소지가 크다.

그렇지만 국정원이 정치 개입을 넘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고 보기에는 따져봐야 할 내용이 많다. 대선과 관련된 글을 올린 직원은 70여 명 중 9명에 불과하고, 이들이 올린 글도 87일 동안 73건으로 전체의 4.1%에 그쳤다. 하루에 1건 정도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에는 하루 수천, 수만 건의 글이 올라온다. 대선 관련 찬반 클릭 건수는 전체 찬반 클릭 건수의 24.7%로 게시글보다는 많다. 그러나 이 역시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금지선을 넘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선거 개입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다.

원 씨의 유무죄와 관계없이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대북 심리전마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심리전의 전장(戰場)은 현실과 사이버공간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정치적 댓글 달기는 국정원이 할 일이 아니다. 역대 국정원장 중에는 임기가 끝난 뒤 사법 처리를 당한 사람이 많다. 민주화 이후에도 국정원장들이 선거 개입이나 불법 감청 혐의 등으로 단죄(斷罪)를 받았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이스라엘의 모사드 같은 정보기관은 정권이 바뀌어도 수장이 임기를 채우는 경우가 흔하다. 정치적으로 엄정하게 중립을 지키기 때문이다.
#원세훈#선거법 위반#정치관여 금지 의무 위반#공직선거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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