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K팝’ 시대에 하이쿠(俳句)를 노래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5-7-5 짧은 음절로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정형시… 미국 초-중학교에서도 가르쳐
일본을 제대로 알려면 정신 깃든 고급문화 알아야
일본은 우리 시조 읊고 우리는 하이쿠를 노래했으면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너무 울어서/텅 비어 버렸는가/이 매미 허물.’

일본 하이쿠(俳句) 시인 바쇼(芭蕉·1644∼1694)의 작품이다. 하이쿠는 5-7-5 음절의 운율을 지닌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다.

19세기 말 서구에 소개된 하이쿠는 서구 문학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인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는 하이쿠에서 이미지즘(imagism·이미지로 표현의 명확성을 시도한 문학 사조)의 원형을 발견했다고 한다.

하이쿠는 세월을 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하이쿠가 “일본 전통문화 중 가장 국제성을 띤 문화”라고 평가한다. 바쇼나 잇사(一茶·1763∼1827)와 같은 하이쿠 명인의 작품은 미국 초·중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잇사의 ‘사람도 하나/파리도 한 마리네/넓은 응접실’은 ‘One man/and one fly/waiting in huge room’으로 영역돼 있다. 미국 초·중등학생들은 연습문제로 하이쿠를 직접 지어 보면서 시(詩) 세계에 입문한다.

하지만 일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하이쿠를 잘 모른다. 일본에 대한 문화 쇄국(鎖國)주의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하이쿠를 전혀 다루지 않았으니 일본 문화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하이쿠를 모를 수밖에.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 말살정책을 생각하면 일본 문화에 대한 쇄국주의는 당연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 기간이 너무 길었다. 쇄국주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B급 및 저질 대중문화는 우리 곁을 슬금슬금 파고들었다. 반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하이쿠와 같은 고급문화는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가 B급 및 저질 대중문화만으로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와 일본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최근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물론 그 직접적인 원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 관련 망언과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의 위안부 관련 망언에 있다.

하지만 양국 관계가 급속히 나빠진 데는 일본 문화에 대한 우리의 무지도 일조를 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확정 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존재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일본을 B급 및 저질 대중문화의 나라라고 일단 확정하면 그 다음부터는 그들의 좋은 면은 외면하려 들게 된다. 베스트셀러 ‘스마트한 생각들’의 저자 롤프 도벨리는 끼리끼리 어울리는 인터넷 공간이 이런 부정적 확정 편향을 확대 재생산한다고 설명한다.

작년 초만 해도 드라마 ‘한류(韓流)’와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열풍 덕분에 일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작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日王) 사과 요구’ 발언 이후 분위기가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와 하시모토 대표의 선동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보름 전 영국 BBC방송이 발표한 국제사회 평판 조사를 보면 한국에 긍정적이라 답한 일본인의 비율이 작년의 34%에서 올해 19%로 하락했다.

우리나라는 개방형 경제를 택해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문화 역시 개방형을 지향할 때 큰 발전을 이룬다. 케이팝의 성공이 좋은 예다. 개방형은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시스템이다. 개방형 문화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케이팝이 세계적 성공을 이뤘다 하나 여전히 수익의 절반 이상은 일본시장에서 나온다. 우리의 일본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깊어지지 않으면 일본에서의 케이팝 성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케이팝과 같은 한류를 통한 그간의 한일 간 선린(善隣) 도모는 경제적 정치적 교류를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됐다. 지금 그 기반이 양국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에 위태로워졌다. 게다가 이를 말려야 할 오피니언 리더마저 선동에 가세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5월 20일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신의 징벌’이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지한파(知韓派)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5월 30일자 동아일보 기명 칼럼에서 김 위원 칼럼에 대한 원폭 피폭자와 많은 일본인의 분노를 염려스럽게 전했다.

한일 관계 악화를 걱정하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피폭자와 지한파 일본인에게 이 자리를 빌려 대신 사과한다. 한일 간 선린 회복을 위한 방법의 하나로 양국 국어 교과서에 각각 하이쿠와 시조를 소개할 것을 제안한다. 일본이 자랑하는 하이쿠 시인 시키(子規·1867∼1902)의 ‘여름 소나기/잉어 머리 때리는/빗방울이여’를 우리 교과서에서 봤으면 좋겠다.

이에 화답해 일본 교과서가 자규(子規·두견새)를 노래한 이조년(李兆年·1269∼1343)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를 싣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시조#하이쿠#문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