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사라지는 예순한 살 最古다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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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청년화가 이인성(李仁星)씨가 경영하는 다방(茶房) 알쓰에 二十八일 밤 八시경쯤 되어 괴한 二명이 돌입하여 동점내에 걸어둔 이인성씨 작품으로 제전에 특선된 ‘고요한 들’을 단도로 찢어버리므로 이것을 제지하든 이인성씨와 충돌되어 一대 난투극이 일어나 일시 센슈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1937년 10월 3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대구발(發) 기사의 전문이다. 난투 현장인 ‘알쓰’ 다방의 사장은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 1937년 그가 개업했던 다방은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던 시절에 향토 문화공간으로 한몫을 했다.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제비다방을 경영했다. 그는 1933년 서울 종로에 다방을 차리고 애인이었던 기생 금홍을 마담으로 앉혔다. 그 시절의 이야기는 소설 ‘날개’로 태어났다. 2년 만에 재정 악화로 문을 닫긴 했으나 제비다방은 근대 문학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으로 대접받는다. 정지용 김기림 이태준 박태원 등 쟁쟁했던 문인들의 사랑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전통다방은 전북 전주시 경원동 삼양다방이다. 설탕과 크림을 넉넉하게 넣은 커피 한 잔 값이 20년 전 그대로인 2000원, 단골은 1500원을 받는 곳, 잣 대추를 듬뿍 넣고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를 파는 곳, 시간이 멈춘 듯 낡은 소파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며 추억여행을 덤으로 선물하는 곳이다. 1952년 문을 연 이 다방이 이달 말 문을 닫는다. 올해 초 건물 주인이 바뀌면서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기 때문. 다방을 살리기 위해 모금 전시회도 열었으나 시간의 거센 물결은 ‘기사회생’을 허락하지 않았다.

▷경복궁 옆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면 1960, 70년대 일상 공간을 재현한 야외전시장 ‘추억의 거리’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는 반세기 동안 정독도서관 앞에서 영업하다 2007년 문을 닫은 ‘화개이발관’이 있고 그 옆에 ‘약속다방’도 있다. 제자리에서 뿌리 뽑혀 박물관으로 이주한 가게들은 박제된 멸종동물처럼 낯설다. 기억의 곳간이 점점 비어가는 것, 아쉽고 허전하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이인성#고요한 들#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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