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현미]애물단지와 보물단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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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박근혜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을 살펴보면 일과 가정의 양립을 통해 여성 고용률을 높이려 한 노력이 보인다. ‘자동 육아휴직’ 덕분에 직장 여성들은 회사 눈치 보지 않고 내리 15개월 동안 육아에 전념할 수 있다. 육아휴직 대상 자녀의 나이 제한도 기존 6세에서 9세로 높여, 막상 닥쳐보면 유치원 시절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 밖에 대체 인력에 대한 각종 지원과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등의 대책도 포함돼 있다.

이번 로드맵은 ‘여성들이여, 마음 편히 애 낳고 언제든 다시 일터로 돌아오라’는 구애처럼 들린다. 출산·양육으로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30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데 가시적 효과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 반드시 고용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12년 매킨지&컴퍼니의 ‘여성 문제 아시아태평양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 일하는 여성의 비율이 낮지 않으나 기업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으로 갈수록 여성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 15∼64세 노동인구 중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중국 74%, 호주 70%, 일본 62%, 싱가포르 60%에 이어 한국 55%로 아시아 10개국 중 5위였다. 그러나 이사회의 여성 임원 비율은 1%로 꼴찌였다. 그 밖의 조사 결과를 봐도 13개 주요 공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 0%, 1787개 상장기업의 여성 최고경영자(CEO) 비율 0.73%, 10대 그룹 여성 임원 비율 1.5%에 불과하며, 최근 발표된 박근혜정부 17개 부처 고위공무원단(실·국장급)의 여성 비율은 5.1%에 그쳤다.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은 무엇일까. 지난달 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인 하이드릭앤스트러글스 사가 한국의 여성 임원과 중간 관리자 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50% 이상이 여성도 남성만큼 사회적 성공을 바라지만, 83%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고 대답한 것. ‘보이지 않는 장벽’에는 “여성이 성공하려면 회사와 결혼해야 한다”는 말에서 나타나듯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하기 어려운 한국의 조직문화와 ‘엄마가 육아를 전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도 포함된다.

자녀를 둘 낳은 여성이 자동 육아휴직 제도를 모두 활용할 경우 총 30개월, 즉 2년 반의 업무 단절이 생긴다. 이는 업종에 따라 개인의 경력에 치명적인 공백일 수 있다. 같은 직위에 비슷한 능력을 갖춘 남성과의 승진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언제라도 시간제 고용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냉정하게 말하면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임원이었던 이현정 상무는 여성 인력과 관련해 ‘애물단지와 보물단지론’을 펼쳤다. 없앨 수도 없고 가지고 있자니 골치 아픈 게 애물단지인데 바로 한국 대기업의 여성 인력이 그런 신세라는 것. 그의 지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업마다 채용의 문을 넓혀 놓고 정작 어떻게 여성 인력을 관리해야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없다. 기껏 여직원이 많아져 성희롱, 성차별과 같이 골치 아픈 문제도 덩달아 늘어나니 남성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예방교육을 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기업문화가 진화하려면 새로운 DNA가 필요하다. 그 새로운 DNA를 여성에게서 찾아라. 여성 인력의 경쟁력은 ‘남자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하고’ ‘남자만큼 술을 잘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니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일하는 전략’에 있다. 정부가 친여성 정책을 발표해도 결국 쓰는 사람, 쓰는 방법에 따라 애물단지가 보물단지로, 보물단지가 애물단지도 될 수 있다.

김현미 여성동아 팀장 khmzip@donga.com
#박근혜정부#여성 고용률#여성 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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