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본국의 ‘甲’부터 재외공관에 폐 끼치지 않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3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은 그제 새 정부의 첫 재외공관장 회의에서 “재외공관이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에만 치중하고 외국에 나가 있는 재외국민이나 동포의 애로사항을 도와주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재외공관의 본국 손님 접대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재외국민 보호와 현장 중심의 맞춤형 영사서비스’를 주문했다.

재외공관은 주재국을 상대하는 외교활동과 재외국민 보호가 기본 업무다. 그렇지만 본국에서 오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요인(要人)들에 대한 의전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교민 행사에는 소극적인 공관장이 줄을 댈 기회를 잡기 위해 본국 요인 접대에는 열과 성을 쏟는 사례도 있다. 본국의 실세한테 잘 보이기 위해 공항 영접에 기를 쓴다고 해 ‘공항 로비’란 말도 생겨났다.

본국에서 온 인사들이 재외공관원들에게 ‘갑’ 행세를 하려 드는 것도 큰 문제다. 공식 일정도 아닌 관광 쇼핑 같은 개인 일정에 대사관 차를 내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무시할 수 없는 인사의 요청은 말이 부탁이지 강요나 다름없다. 이명박정권 시절 한 실세는 미국 방문 시 공항에서부터 ‘격을 갖춘’ 의전을 원했다. 그가 올 때면 엘리트 외교관들이 업무를 제쳐두고 공항에서 대기했다. 그때는 공항에 나가 그를 영접하고 싶은 외교관들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비화가 정권이 바뀐 뒤에야 흘러나오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몇 해 전 뉴욕을 찾은 모 국회의원은 관광 크루즈를 타는 일정에 외교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대사관 측이 인턴을 보내려 했으나 해당 의원이 “어디 감히…”라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영사 한 명이 근무하다 말고 황급히 달려 나가 가이드 역할을 했다.

재외공관은 국가를 대표하고 교민을 보호하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과다한 공항출영과 비공식 뒷바라지 같은 본국 손님 접대에 매달리게 되면 외교활동에 지장을 주고 세금을 낭비하게 된다. 2009년 일본의 연립여당은 “해외 출장 시 방문국 재외공관으로부터 접대를 받지 말라”는 방침을 정했다. 외국을 찾는 정치인과 요인들부터 과도한 응대 요구로 재외공관에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각(自覺)이 있어야만 대통령이 강조한 ‘맞춤형 영사 서비스’도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재외공관장 회의#본국 손님 접대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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