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우재룡]내 집에서 나이 들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우재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이사장
우재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이사장
유럽에서 ‘은퇴 설계’란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난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생활반경이 집을 중심으로 좁아지게 된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주거지는 삶에 큰 영향을 준다. 주위에 어떤 문화시설과 병원이 있는가에 따라 생활 만족도가 달라지고, 좋은 이웃과 왕래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현재 은퇴를 맞이하는 중장년층들은 어떤 주거계획을 원하고 있을까. 몇 가지 조사결과를 종합해 보면 약 70%가 현재 자기 집에서 계속 지내길 원한다. 중소 도시로 옮기거나 농촌으로 옮기려는 사람은 50대의 경우 30% 정도며 60대는 20%대로 줄어든다. 이런 경향을 ‘내 집에서 나이 들기’라고 한다.

현재 사는 곳에서 나이 든다는 말은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소 도시나 농촌 전원주택으로 이사해 좋은 자연 속에서 살면 멋진 삶이 되겠지만, 인간관계와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너무 부담이다. 중장년층이 되어서 이사를 자주 하거나 너무 멀리 옮기면 자신이 속해 있던 공동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장수시대를 맞이하면서 ‘내 집에서 나이 들기’가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주거계획의 또 다른 큰 핵심은 병이 들었을 경우 ‘간병기’를 어디서 보낼 것인가이다. 50, 60대는 여전히 70%가 넘는 사람들이 “내 집에서 지내고 싶다”고 한다. 요양시설이나 병원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30% 미만이다. 이런 추세는 유럽이나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퇴자협회(AARP)에서 45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약 86%가 자기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자들이 내 집에서 오랫동안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으려면 집을 고쳐야 한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낙상사고를 당하는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장치를 해야 하며 휠체어를 타고 집 안에서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고 출입문을 넓혀야 한다. 이런 개념으로 집을 개조하는 것을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한다. 장애의 유무나 연령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제품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이제야 고령사회를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보급이 미흡하다.

206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40.1%를 노인 인구가 차지한다. 은퇴 후 노후생활을 멋있게 보내기에 가장 좋은 곳은 전원이 아니라 도심의 내 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은퇴를 하더라도 도시 생활에 참여해 왕성하게 취미 여가활동과 사회봉사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퇴설계를 짜야 한다.

우재룡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이사장
#은퇴 설계#주거계획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