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자리 대물림’은 사회 정의에 어긋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8일 03시 00분


울산지법이 업무상 재해로 사망한 직원의 유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현대자동차의 단체협약 규정이 사용자의 인사권을 침해했으므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유족의 채용을 단체협약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일자리 대물림을 낳아 사회 정의에 배치되며, 취업 희망자들을 좌절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현대자동차에서 정년퇴직한 이후 재직 중에 얻은 질병(폐암)으로 2011년 사망한 황모 씨 유족이 “아들을 특별채용해 달라”며 제기한 고용 의무 청구소송에서다.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 유족의 ‘일자리 대물림’에 법원이 제동을 건 첫 판결이다.

산업재해로 가장을 잃게 된 유족은 생계가 막막해진다.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공정한 채용 경쟁을 거치지 않은 일자리 대물림은 청년 실업자나 비정규직 근로자가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빼앗는다. 기업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족에게 일자리 대신에 위자료 56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한 재판부의 판단은 이런 점에서 사리에 맞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급여를 받고 있는 대기업 노조원들의 일자리 대물림은 국민 사이에 반발을 부르고 있다.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장기 근속자나 정년퇴직자의 자녀를 우대하는 단체협약은 더 납득하기 어렵다. 현대자동차를 포함해 국내 200대 기업 중 32.5%가 단체협약에 직원 가족에 대한 채용 우대 조항을 두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직원 자녀들은 부모가 재직했던 회사 문화를 잘 알고 있고, 충성도가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 경영진이 기업 경쟁력 차원에서 판단할 몫이지, 단체협약으로 강제할 사안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 인종에 대한 입학 우대제도조차도 역차별 논란으로 위헌 시비까지 붙었다.

우리 사회는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는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부유층의 편법적인 부(富)의 대물림이 비판을 받는 것은 공정한 경쟁과 평등한 기회를 막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의 일자리 대물림도 양극화를 고착시키고 공정사회를 저해한다. 대기업 노사는 법원의 판단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사회 통념에 맞게 단체협약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 노조도 사용자 쪽에 경제민주화만 요구하지 말고 공정사회를 위해 스스로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해 볼 때가 됐다.
#현대자동차#일자리 대물림#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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