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유럽 왕실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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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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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물결이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의 왕궁 앞 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왕실의 상징색인 오렌지색 모자, 가발, 안경, 망토로 장식한 사람들은 33년 만에 펼쳐지는 동화 같은 새 국왕의 등장에 신이 나 죽겠는 표정이었다. 여왕의 날인 4월 30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양위 사인을 마치고 ‘공주’로 신분이 바뀐 베아트릭스 전 여왕과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 막시마 소레기에타 왕비가 꽃으로 장식된 왕궁 발코니에 나타나 손을 흔들었다. 시어머니의 손을 꼭 쥔 41세의 왕비는 너무나 밝게 웃어서, 저렇게 표 나게 좋아해도 되나 싶었다.

▷첨단 정보기술(IT)이 주름잡는 21세기에, 그것도 유로존 재정위기 속에 왕조가 웬 말이냐는 사람도 있다. ‘관용’으로 이름난 네덜란드지만 엘리트와 이민자에 대한 반감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왕실 유지를 원하는 여론이 85%다. “왕실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니까.” 밤늦도록 춤과 노래와 맥주를 즐기며 사람들이 말했다.

▷유럽연합(EU) 27개국 중 10국에 왕실이 있다. 평등을 중시하는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그리고 EU는 아니지만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에 엘리트 중 엘리트인 왕실이 존속한다는 건 묘한 패러독스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잘난 정치권이 신뢰를 잃을수록 선거와 상관없이 국가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왕실이 힘을 갖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와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의 갈등이 심각한 벨기에에서도 “알베르 2세 국왕이 없다면 나라가 갈라졌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 같은 ‘어른’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국기(國基)가 흔들릴 때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어른 말이다. 유럽의 왕실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중심이어서 존경을 받는다. 시대변화에 따라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현명함도 있기에 사랑받는 건 물론이다. 왕관 없이, 대관식(coronation) 대신 취임식(inauguration)을 갖는 네덜란드 국왕처럼.

암스테르담=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네덜란드#베아트릭스#막시마 소레기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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