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MBC, 勞營방송도 官營방송도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7일 03시 00분


MBC 김재철 사장이 어제 해임됐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김 사장이 방문진과 사전 협의 없이 계열사 임원 인사 내정자를 발표해 방문진의 임원 선임권을 침해했다는 등의 해임 사유를 밝혔다. 김 사장의 위반 사항이 1988년 방문진 설립 이후 첫 사장 해임 결정을 내릴 만큼 중대한지는 의문이 든다.

이보다는 야당 및 MBC 노동조합의 끈질긴 김 사장 퇴진 요구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기준으로 한 ‘공공기관 인사 물갈이’론이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사장은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됐다. 이번 김 사장 해임안은 야당 측 방문진 이사 3명에 여당 측이 추천한 이사 2명이 가세해 5 대 4로 가결됐다. 김 사장의 해임 사유에 대한 방문진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다.

민주통합당은 “공영방송 MBC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노조의 장기 파업에 원인이 된 김 사장의 해임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성명을 냈다. 통합진보당도 “MBC가 국민의 방송으로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다행”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MBC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추락시킨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와 관련해 왜곡 보도를 한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이다. MBC는 2008년 촛불시위를 촉발할 만큼 국기(國基)를 뒤흔든 ‘PD수첩’ 보도에 대해 자사 방송과 일간지에 사과했다.

MBC 노조는 지난해 1월부터 170일간 ‘공정방송 구현과 낙하산 사장의 퇴진’을 내걸고 장기 파업을 벌였지만 실제론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 투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방송의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차기 사장을 물색할 것을 방문진에 요구했다. 그러나 노조 세력의 눈치를 보는 사장이 나올 경우 왜곡방송, 편파방송이 다시 등장할 소지가 있다.

MBC는 노조가 방송사 운영을 사실상 주도하는 노영(勞營)방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 사장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점은 인정할 만하다. 김 사장은 “보직간부조차 노조를 두려워했다”며 “공영방송 MBC의 위상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노영방송은 사라져야 하지만 관영(官營)방송으로 가서도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과 코드 또는 국정철학을 공유한 사람이 사장에 임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MBC 주식은 방문진이 70%를, 정수장학회가 30%를 소유하고 있다. MBC 사장 인사 못지않게 정수장학회 지분 처리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부가 방송사 사장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되지만 야당이나 MBC 노조 역시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흔들어선 안 된다. 노영방송도, 관영방송도 공공성과는 상극이다.
#김재철 사장#방송문화진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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