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원병 공천 안한 민주당, 公黨인가 空黨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민주통합당이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어제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야권연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지난해 18대 대통령선거 때 중도 사퇴한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에게 진 빚을 갚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 후보를 내봤자 당선이 힘들 것이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원내 127석을 가진 제1 야당이 국회의원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공당(公黨)의 역할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정치공학적 고려는 하지 않겠다던 안 전 교수 측도 민주당의 무(無)공천을 부추겼다. 공천 문제로 민주당 내부가 갈라지자 “우리도 크게 보면 범야권”이라며 민주당에 ‘야권연대’를 재촉했고, 무공천 발표 후에는 “바람직하다”고 환영했다. 만만치 않은 현실에 ‘구태 정치’의 지원이 간절하다고 고백한 것과 같다.

국민은 이번 일에서 10년 전 데자뷔(기시감·旣視感)를 느낀다. 2003년 4·24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당시 유시민 개혁당 후보를 위해 경기 고양 덕양갑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지금의 안 전 교수처럼 ‘정당개혁과 정치혁명’을 주장했던 유 후보는 당선되자마자 ‘개혁신당’을 외쳤다. 이것이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되어 그해 11월 열린우리당 창당과 민주당 분당으로 이어졌다.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유 후보로 단일화하지 않고 자당의 김진표 후보를 공천했더라면 당선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안 전 교수만 한 후보가 없다면 당당하게 안 전 교수에게 민주당에 입당하라고 요구하는 게 옳다. 박원순 서울시장처럼 무소속으로 이긴 뒤 입당하는 일이 반복되니까 민주당의 체급이 떨어지는 것이다. 18대 대선에서 독자적인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안 전 교수에게 끌려다니던 민주당이 이번에도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번 재·보선을 “인사 사고와 오만한 국정운영에 대한 견제와 심판”이라고 했는데 후보도 내지 않고 어떻게 심판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재·보선을 치르는 세 지역구 가운데 서울은 후보를 내지 않고,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부산 영도와 충남 부여-청양에서 패배한다면 민주당의 존재감은 더 가벼워질 것이다. 60년 전통에, 10년의 집권 경험까지 있는 민주당이 언제까지 정치 신인(新人)의 들러리나 설 것인가. 이러다가 빈껍데기만 남은 공당(空黨)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무슨 할 말이 있겠나.
#민주통합당#재·보궐선거#노원병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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