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용관]행복하게 해 줄 테니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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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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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정치부 차장
정용관 정치부 차장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20번이나 언급하며 국민행복 시대를 선언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그의 첫 수필집 제목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의 삶은 굴곡 그 자체였다.

그의 책이나 인터뷰 어디에서도 성인이 된 이후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들다. 1993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읽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삶에 만족한다고 밝힌 정도다. 다만 친조카와 시간을 보낼 때 많이 행복해한다는 얘기는 들린다. 아마 ‘독신 가장’으로서 집안의 대를 잇게 된 데 대한 고마움과 안도감이 깔려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소망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시작해 숱한 철학적 종교적 정치적 논쟁이 이어져 왔지만 명쾌한 정답은 없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오천만 국민행복 플랜’을 들고 나왔을 때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국가경제가 발전해도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라는 박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폄훼할 필요는 없다. 최근 불거진 세대갈등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불안과 불행이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이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을 일으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행복이라는 화두를 선제적으로 던진 것은 대선전략 측면에서도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서 나온다고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행복은 소득 증가보다는 사람과의 관계 등 다른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있지만, 저소득층은 주로 소득이 많아지는 것에 비례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의 ‘행복론’을 보며 뭔가 공허함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박 대통령이 소득, 일자리, 안전, 노후 대책 등 민생을 중시하면서 국민행복을 ‘시혜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행복은 누가 안겨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객관적 조건뿐만 아니라 주관적 요인이 복잡 미묘하게 얽힌 과정이고, 그에 따른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대통령 한 명 바뀌었다고 ‘행복 시대’가 활짝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 우민(愚民)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바에야 양질의 일자리를 수십만 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긴 그 행복의 시대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조직 구성조차 안 되고 있으니 말해서 뭣하랴.

국연(國緣)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시대에 같은 지도자를 둔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 그 또한 운명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5년 뒤 우리는 ‘행복의 나라’라는 항구에 닻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청와대에 입성하던 날, 오랜만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박 대통령은 모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그 환한 미소를 보며 나이 든 분들 중엔 “짠했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마음속으로 자기의 삶이 행복해지기보다는 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삶이 행복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줄 테니 나를 따르라’는 식의 태도는 영 아니다. 취임 열흘도 안 돼 TV 생중계를 통해 접한 대통령의 노기(怒氣)는 ‘국민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박근혜#행복#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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