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등 떠민 후진 정치, 쉽게 떠난 김종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박근혜 대통령 인사의 백미(白眉)로 꼽히던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어제 전격 사퇴했다. 김 후보자는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제가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 어려워졌다”며 한국의 후진적인 정치문화에 실망해 사퇴한다는 뜻을 밝혔다. 김 후보자의 사퇴는 국민적인 손실이다. 새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창조경제를 추진하는 일도 출발부터 타격을 입게 됐다.

김 후보자의 사퇴 배경에는 곧 예정된 인사청문회의 험난한 과정과, 한국 조직문화 적응의 어려움 등 개인적인 사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의 편협한 세계관과 낡은 정치문화가 귀중한 인재를 내쫓았다고 보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어제 대국민 담화에서 말했듯이 김 후보자는 미래 성장동력과 창조경제를 위해 삼고초려해 영입한 인물이다. 그가 미국에서 장기간 축적한 경험과 도전정신이 한국의 새로운 분야 개척에 기여할 것으로 많은 국민은 기대했다. 그럼에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김 후보자의 미국 중앙정보국(CIA) 자문 경력과 과거 발언 등을 문제 삼아 장관으로 부적합하다는 공세를 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이었던 그에 대해 한국인과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흠집 내기를 하면 누구도 견뎌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김 후보자는 미국 이민을 통해 꿈을 이룬 재미동포들의 대표 격이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맨손으로 벤처기업을 세우고 성공신화를 일군 그는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자 모국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심했다. 장관 후보자 지명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회복하고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대가로 세금 1000억 원을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조국 헌신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기득권을 버리고 연어가 회귀하듯 한국에 돌아가 힘을 쏟겠다는 그를 한국 정치의 폐쇄성이 밀어낸 셈이다.

각국이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고급두뇌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미국 사회도 탐내는 인물을 끌어들이지 못하면서 어떻게 해외인재 유치를 말할 수 있을 건가. 외국 인재들이 이번 일을 보고 “역시 한국은 아직 멀었다”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스럽다.

김 후보자 사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장관직을 수행하려면 이번보다 더 험난한 일을 많이 겪어야 했을 것이다. 장관에 취임하기도 전에 청와대와 야당 사이의 마찰을 이유로 장관 자리를 포기한 것은 그가 공직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한국에 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의 장관 후보자 사퇴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 향후 해외인재 유치와 관련한 무거운 숙제를 던졌다.
#김종훈#박근혜#미래창조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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