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염희진]김빠진 먹거리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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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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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부 기자
염희진 산업부 기자
한국의 전통주인 막걸리가 처음 일본에 진출한 건 1993년이다. 이후 포천 이동막걸리와 국순당을 비롯해 대기업과 지역 양조업체가 속속 진출했다. 2010년 장수막걸리와 롯데가 손잡고 만든 서울막걸리는 일본 거대 주류업체 산토리의 유통망으로 퍼져나갔다. 이 제품 광고에서 한류스타 장근석 씨는 ‘막걸리는 위아래로 여러 번 흔들어 먹어야 제맛’이라는 점을 일본인에게 각인시켰다. 이때부터 막걸리는 일본에서 또 다른 한류스타가 됐다.

막걸리는 일본식 발음으로 ‘맛코리(マッコリ)’라 불린다. 그런데 최근에는 ‘왓코리(和っこり)’라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본을 뜻하는 와(和)와 맛코리(まっこり)를 합성한 이 단어는 일본풍 막걸리라는 뜻이다. 왓코리를 만드는 일본 업체들은 일본산 쌀과 물로 빚어 일본인 입맛에 맞는다는 점을 내세운다. 게다가 왓코리는 고급스러운 유리병에 담겨 한국산 캔 막걸리를 주눅 들게 만든다. 국내에서 막걸리를 와인처럼 병에 담아 고급화하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결국 대중화되지 못했다.

얼마 전 일본에 있는 막걸리 양조장을 둘러본 막걸리학교의 허시명 교장은 “일본이 한국 막걸리를 재빠르게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있다면 우리는 보따리장사처럼 막걸리만 팔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이대로 가면 일본 업체에 막걸리 주도권을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년간 막걸리 세계화에 공을 들여온 국내 업체들은 김이 잔뜩 새버렸다.

막걸리에서 보듯이 먹거리의 세계화는 참 힘든 일이다. 싸이가 유튜브에 올린 뮤직비디오 한 편으로 월드스타가 되는 ‘사건’은 식품업계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완제품을 그대로 파는 게 아니라 현지인의 입맛을 파악해 나름의 조율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 인력과 자본이 투입된다. 커피크리머인 ‘프리마’를 27개국에 수출하는 동서식품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위해서만 20가지 버전을 만들었다.

CJ푸드빌의 글로벌 외식 브랜드인 ‘비비고’는 2010년 해외로 진출해 중국 미국 등 5개국에 13개 매장을 냈다. 국내 매장을 내는 데 보통 40명이 투입되는데 해외 매장을 내려면 두 배의 인력이 든다고 했다. 기업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성공이 불투명한 사업인데 최근 일본과 미국 업체가 비빔밥 브랜드를 잇달아 내놓으며 힘이 빠졌다. 여기에 동반성장위원회가 외식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며 비비고는 안팎으로 위기다. 만약 동반위가 외식 대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까지 금지한다면 CJ푸드빌은 당장 연구개발팀 인력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골목상권을 보호하려 했던 조치가 비빔밥 세계화의 꿈을 가로막게 생겼다.

커피를 즐기는 카페문화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커피로 어마어마한 돈을 챙기는 건 미국 기업 스타벅스다. 뉴욕에서 태어난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길에 맛본 카페 에스프레소에서 창업의 영감을 얻었다. 막걸리와 비빔밥을 먹고 이를 글로벌 상품으로 만드는 데 자격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막걸리와 비빔밥이 ‘종주국 프리미엄’을 내세우기에 국제무대는 그리 한가하지 않다는 얘기다.

염희진 산업부 기자 salthj@donga.com
#한류#먹거리#비빔밥#막걸리#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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