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기현]종편과 SBS, 그리고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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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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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노태우 정부 당시인 1990년 7월 15일 국회 본회의장. 박준규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열기위해 들어가려 했지만 야당 의원들이 의장석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김재광 부의장이 회의장 의석 통로에서 회의를 기습 진행해 26개 안건을 30초 만에 전광석화같이 처리했다.

이날 통과된 법 중 야당이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것은 민영방송(민방)을 허용하는 방송관계법이었다. ‘민방 허용은 정권의 방송 장악 음모이며 특혜’라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었다. 앞서 상임위에서도 몸싸움과 욕설 속에 이 법안이 통과됐던 터라 당시 제1야당이었던 평민당(민주당의 전신)은 소속 의원 전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김대중(DJ) 총재에게 맡기고 전면투쟁을 선언했다. 이 법의 무효를 주장하며 헌법소원도 냈다. 그러나 1년 5개월 후인 1991년 12월 SBS의 개국을 막진 못했다.

새로운 매체 도입에 대한 여야의 이견과 국회에서의 물리적 충돌, 국회 표결 결과를 헌법재판소까지 끌고 간 것 등은 최근에도 본 듯한 모습이다. 2009년 7월 미디어관계법 국회 처리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다. 이 법을 통해 채널A 등 4개의 종합편성채널TV가 2011년 말 개국했다.

방송 환경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새로운 매체가 20년 간격을 두고 우여곡절 끝에 출현하는 과정에서 야당의 대응과 태도는 크게 달랐다. 민방에 거세게 반대했던 평민당이었지만 막상 SBS가 출범하자 특별한 적대감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현 민주당은 종편 출범 때부터 방송 출연과 인터뷰는 물론 취재까지 거부하는 것을 사실상 당론으로 삼았다. 지난해 총선 대선을 거치고 오늘까지도 공식적으로 이런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20여 년 전보다 훨씬 경직되고 완고한 언론관을 드러낸 것이다.

채널A의 간판 시사토크 프로그램 쾌도난마를 진행하는 박종진 앵커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민주당 인사들의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받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채널A에 출연하고 싶은데 아직 당의 방침이 바뀌지 않아 나가지 못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의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되는 신계륜 의원은 최근 대한배드민턴협회장으로 선임된 후 채널A가 협회 현안을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를 거부했다. 체육단체장과 정치인 사이에서 본인도 처신이 헷갈리는 모양이다.

대선 패배 후 정대철 전 의원 등 민주당 원로·중진들은 “종편 출연 거부는 큰 실수였다”고 뼈아파했다. 당내엔 전정희 의원처럼 “종편에 출연했어야 했다. (출연 거부는) 정책과 생각을 알릴 수 있는 통로를 우리 스스로 차단한 꼴”이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많다.

지난해 대선전이 치열해지자 다급해진 민주당 인사들 상당수가 ‘개별적으로’ 채널A 등 종편에 나왔다. 이미 출연금지의 원칙은 사실상 허물어지고 현실을 추인하는 절차만 남았지만, 이 마지막 고비를 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일부 신문은 기계적인 공정성조차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응원하는 보도 행태를 보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당선인 측이 이들 매체에 대해 매몰차게 취재 거부를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언론 대응이 편협하다는 인상만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민주당 안팎에선 ‘종편과 종편 시청자들은 어차피 우리 편이 아니다’, ‘이제 와서 종편을 인정하는 것은 백기 투항이고 조롱거리’라는 목소리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감각도 유연함과 포용성도 없는 이런 ‘뺄셈 논리’의 한계는 지난 대선에서 드러났다. 성공적으로 출범해 일정한 역할과 영향력을 확보한 종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그토록 반대했던 민방을 ‘쿨하게’ 현실로 인정했던 DJ는 6년 후 집권에 성공했다.

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kimkihy@donga.com
#종편#SBS#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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