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11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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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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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최근에야 알았다. 웬만큼 눈이 밝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고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그게 바로 그들의 노림수다.

정부 예산안이 헌정 사상 처음 해를 넘겨 통과됐다. 지난해 12월 31일 민주통합당 의원 6명이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예산안 처리를 가로막은 결과다. 하지만 이들은 예산안 늑장 처리의 종범(從犯)일 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날 일어난 일이 아니다. 왜 12월 31일이 돼서야 예산안이 짜였느냐가 본질이다.

여야는 예산안 처리 약속을 3차례나 어겼다. 11월 22일과 12월 2일은 그렇다 치자. 12월 19일 대선에서 이기면 전부 먹을 수 있는데 굳이 나눠 먹기 싫다는 원초적 이기심이 작용했다면 인간적 연민으로 봐줄 수 있다.

마지막 약속 시한은 12월 28일이었다. 여야는 대선 직후인 21일부터 증액심사에 들어갔다. 통상 증액심사에 1주일이 걸리니 28일 통과는 무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증액심사 개시부터 예산안 타결까지 열하루가 걸렸다.

바로 이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가 이번 사태를 푸는 열쇠다. 그들은 호텔 방을 옮겨 다니며 정부 예산을 사정없이 주물렀다. 뭘 어떻게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애초 증빙자료를 남기지 않으려고 호텔 방을 전전했으니 그들에게 속기록을 요구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최근에 알게 된 신종 수법은 놀랍다.

대표적 민생예산 가운데 농작물재해보험 예산이 있다. 그들은 정부안 1177억 원에 389억 원을 얹었다. 그러면서 꼬리표를 달았다. 증액 예산 중 27억4800만 원을 ‘경기지역 배 종합보험 시범사업’에 쓰도록 한 것이다. 그 많은 농작물 중 왜 하필 배고, 왜 하필 경기지역일까. 바로 새누리당 예결위 간사인 김학용 의원의 지역구가 경기 안성이다. 2011년 경기지역 배의 35.5%가 안성에서 났다.

이는 쪽지 챙기기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쪽지 예산은 지역이 명시돼 있어 금방 드러난다. 욕먹을 각오로 챙기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예산에 지역예산을 이처럼 교묘하게 끼워 넣는 고난도 하이테크 기술은 지금까지 전례가 드물다. 이런 식으로 그들이 쪼개 먹은 민생예산이 얼마나 될지, 얼마나 새로운 수법이 웅크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철통보안 속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인선을 할 때 그들은 철통보안 속에 이런 일을 했다. 정치 쇄신의 요구가 드높을 때 벌인 일이다. 그들은 김 의원과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 이석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등이다.

박 당선인은 자신이 집행할 예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예산실장에게서 제대로 보고받아야 한다. 지역예산은 차치하고 정책예산에 사(邪)가 끼지 않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말처럼 보안으로 정권의 신뢰가 쌓인다면 그보다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박 당선인과 같은 마음이 아님을 어쩌겠는가. 새 정치를 여는 데 필요한 것은 함구령이 아니라 구태를 낱낱이 까발리는 일이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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