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 공약, 한정된 재원 맞춰 구조조정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5일 03시 00분


다음 달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가 나랏돈을 들여 곧장 실행에 옮겨야 할 공약은 252개에 이른다. 실현 가능한 재원(財源) 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출범 직후 ‘부도 공약’이 쏟아질 판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중 당선인의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원 조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막대한 재원을 짧은 기간에 마련할 수 있는 묘안은 없을 것이다.

박 당선인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5년간 131조 원, 연평균 26조 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당선인의 기초노령연금 두 배 인상 공약(약 9만5000원→20만 원)에 난색을 보이자 당선인 측에서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고 한다.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당선인 측이 공약 이행에 의지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급하게 내놓은 공약까지 무리하게 다 이행하려 들다가는 나라살림이 버티기 힘들 것이다. 당선인은 여당 내에서조차 공약재고를 요청하고, 일각에서 ‘당선인 공약이행을 위한 재원이 실제보다 적게 추산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당선인 측은 불필요한 세출을 줄이고 세입을 늘려서 공약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올해 복지 예산은 사상 처음 100조 원을 넘겼다.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여야가 복지 예산을 증액하고, 반값등록금과 무상보육에 들어갈 이른바 ‘박근혜 예산’을 보탠 결과다. 기초노령연금 인상이나 사병 군복무 단축처럼 조 단위의 예산이 필요한 공약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재원이 더 필요한데도 버스업계 유류세 감면, 중견기업 세제 혜택,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처럼 오히려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공약도 적지 않다. 일부에서 얘기하듯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형국이다. 한정된 재원으로 공약을 실현하려면 공약의 가짓수를 줄이고 우선순위를 정해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공약의 부작용’도 최소화해야 한다. 당선인은 자활 의지가 있는 채무자의 빚을 깎아주거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18조 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하고, 암 심장질환 희귀난치병 뇌혈관 질환과 같은 4대 중증질환 치료비를 100% 보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채무자 우선 정책이 “빚을 다 갚는 사람은 바보다”라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부른다면 곤란하다. 무턱대고 고가진료를 요구하는 풍조를 만들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일이 생겨서도 안 될 것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정부 전망치(3%)보다 낮은 2.8%로 예상했다. 경기가 나빠지면 올해 세수 목표인 204조 원을 달성하기도 쉽지 않다. 국세청을 동원해 무리하게 세원을 쥐어짜게 되면 경제가 위축되고 돈이 지하로 숨어버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국세청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현금거래 자료를 모두 활용하면 연간 최대 6조 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권의 비호 아래 징벌의 수단으로 세무조사의 칼날을 휘둘렀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이런 방식은 개인의 금융정보 보호라는 금융실명법의 골간을 해칠 우려가 크다. 국세청의 자료 열람권을 확대하려면 확실한 개인정보 보호 대책과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이 전제돼야 한다.

양극화에 따른 갈등과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성장 잠재력 위축을 해결하려면 복지 예산 증액은 불가피하다. 조세연구원은 저출산 고령화만으로도 2050년이면 국가부채 비율이 남유럽의 재정위기국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모든 걸 공짜로 해결해 주겠다는 보편적 복지보다 보육이나 취업 지원과 같은 사회 안전망을 탄탄하게 짜는 선별적, 생산적 복지로 복지 지출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高)복지 고부담의 원칙과 증세(增稅)를 통한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정치 리더십을 발휘해야 ‘공약의 저주’를 피할 수 있다.
#공약#박근혜#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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