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유윤종]언어의 과잉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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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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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유윤종 문화부장
어릴 때 병원에 들어가면 처음 만나는 사람은 위인전 속 나이팅게일 같은 흰옷을 입은 ‘간호원 누나’였다. 주사의 공포감에 울면 미소 지으며 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그 간호원 누나들은 1987년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이듬해부터 ‘간호사’로 불리고 있다. ‘간호원’에 비전문적인, 비숙련직의 느낌이 들기 때문에 바꾸었다고 한다.

선거 치르며 ‘언어 수위’ 높아져

간호사들의 업무가 전문적이며 고도의 숙련을 요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교사에 대학교수 등을 합친 개념이 ‘교원’이다. 그런데 ‘원(員)’이 ‘사(師)’보다 낮다면, 교사가 교수를 만났을 때 이들을 ‘교원들’이라고 부를 경우 교수나 교사보다 숙련도가 낮아지는 걸까.

어릴 때 택시를 타면 노란 정복에 흰 장갑을 낀 ‘운전수 아저씨’가 있었다. 지금은 ‘운전기사’가 되었다. 역시 ‘운전수’라는 단어가 비전문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식을 중심으로 ‘셰프’를 대체하고 있는 ‘숙수(熟手)’는 어떻게 되는 걸까. 끓이고 익히는 단순 업무만을 하는 사람인가. 직업명에 놈 자(者) 자가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특정의 장애를 제외하면 다른 부분에서 비장애인들보다 우수한 자질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그들을 보호해야 함은 물론이다. 예전에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언어장애인 등을 부르는 말은 순우리말을 썼다. 이 말들이 비하적 표현이라고 해서 바꾼 것이다. 대부분 그 순우리말 자체에 비하적인 요소는 없는데도 그렇게 순우리말 몇 가지가 일상회화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새로 쓰는 말들을 언중(言衆)이 비하의 뜻을 담아 사용하게 된다면 그 말들은 또 바꾸어야 될 것이다.

이 같은 일들은 점차 약효가 강한 약들을 쓰게 되는 항생제 과잉투약 현상을 연상하게 한다. 쓰던 항생제가 듣지 않게 되면 다른 약으로 대체하고, 결국 최신의 항생제로도 듣지 않는 병원체가 만연하게 된다. 한두 사람이 조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전국의, 전 세계의 환자들이 고단위 항생제를 아낌없이 투약할수록 항생제 위기는 커진다.

두 건의 큰 선거가 있었던 2012년, 우리 사회의 언어 수위는 유난히 높았다. 한쪽 진영의 공분을 산 언어는 반대쪽으로부터 더 격한 수위의 언어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반대 진영에 ‘구역질’ ‘창녀’ 등의 표현을 퍼부은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 임명에 대한 야당 측의 실망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정치권과 이 사회가 뿌린 ‘거친 입’의 맨얼굴을 그에게만 투사하고 홀가분해할 수는 없다. “공산당 같다” “김일성의 아명(兒名)” “×물을 튀기는 잡탕” “기생충” “홍어×” “그×(여성을 뜻하는 비칭)”…. 양측 공식 대변인 라인을 비롯한 정치권 전반에서 선거 기간 안팎에 쏟아진 말들이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각종 인터넷 게시판은 말할 것도 없다.

이젠 거칠었던 표현들 순화시킬 때

이제 선거는 지나갔다. 표현의 강도가 높아진 언어들을 ‘쿨다운(냉각)’할 시간이다. 새로 출범할 정부에 걱정되는 징후가 발견되면 적확하고 투명한 언어로 지적해 주면 된다.

마침 한 해의 마지막 달력도 그 수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 누구나 한 해 동안 주변에, 이웃에, 동료에게 크고 작은 말의 폭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우리 전래 설화를 각색한 웹툰 ‘신과 함께’에는 ‘발설(拔舌)지옥’이 등장한다. 사람은 저승에 가서 입으로 행한 죄로 인해 혀를 뽑히고, 소가 그 혀를 갈아 밭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설화를 만들어낼 만큼 말의 폭력을 경계했던 조상들의 정신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한 해 동안의 ‘과잉언어’를 새하얗게까지는 아니라도 쓸어내고, 정확하고 합리적인 언어가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새해가 되기를.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언어#약효#과잉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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