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석일]누구를 위한 무상의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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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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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일 국민건강실천연대 상임대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장석일 국민건강실천연대 상임대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무상의료는 18대 대선의 대표적인 쟁점 공약이다. 그렇다면 미래 대한민국의 의료서비스 공급자인 의료·보건 관련 학과 대학생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의료·보건 시민사회단체인 국민건강실천연대의 설문조사 결과는 무상의료 공약이 대(對)국민 교감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정치권의 ‘나 홀로’ 정책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국민건강실천연대는 11월 초 전국 보건·의료 전공 대학생 915명을 대상으로 무상의료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 중 29.6%만이 그 내용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얼마 뒤 일선 현장에서 종사하게 될 학생들조차 자신들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이 공약이 국민적 열망과 동의에 따라 나온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 손님 끌기용으로 급조한 것이라는 사실을 방증한다.

왜 무상의료가 필요한지, 국민의 삶에 어떠한 변화가 오는지, 정책 실현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무상의료와 관련해 어느 하나라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된 게 있을까. 국가적 명제로 공감할 만큼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공약은 일방통행식 정치구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무상의료에 대한 찬반의견도 물었다. 찬성과 반대, 중립이 약 30%씩 비슷한 비율로 나왔다. 그러나 그 내용을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무상의료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의 경우 찬성이 31%, 반대가 41%로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무상의료에 대해 모른다고 답한 응답자의 경우 찬성이 37%, 반대가 27%로 찬성이 많았다. 결국 무상의료 정책을 잘 모를 경우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내용을 잘 알지 못하면서 겉으로 그럴듯한 구호에 사람들이 쏠리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무상의료 공약이 정치권의 선거용 정략도구로 이용되는 것은 견제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복지 포퓰리즘이 국민의 기본권인 건강할 권리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무상의료 정책을 펴기 위한 재원조달 가능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각종 대선공약 평가단은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정당의 실행 공약이 대부분 현실성이 떨어지고 실현성이 낮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이 이어지자 해당 정당에서는 무상의료 공약이 공짜 의료라는 오해를 낳고 있다며 또 다른 미봉책을 급조했다. 고액 의료비로 가계가 파탄나는 걸 막겠다며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를 무상의료의 개념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건강보험 전문가들은 이 공약을 실현하는 데 최소 13조6000억 원에서 최대 28조6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추산한다.

이 돈을 어디서 마련할 수 있을까. 당장 전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1.5배씩 올려도 충당하기 어려운 액수라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 재정건전성이 약화될 수 있고 이는 결국 국민 개인의 경제적, 의료적 고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해 복지국가의 모델로 손꼽혔던 그리스의 현실을 보자. 방만한 국가재정 운영으로 문을 닫는 병원이 늘어 국민의 15%가 진료를 받지 못하고 약물 중독자와 성병 감염자가 최근 2년 새 50%나 급증했다. 사정은 무상의료 정책을 펼친 다른 유럽 국가들도 다르지 않다. 국가 재정의 4분의 1을 투입해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영국에서는 전문의를 만나고 실제 치료를 받기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영국의 암환자 중 38%는 조기진단을 받지 못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제 대선이 코앞이다. 국민에게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무상의료 정책인지 제대로 알려야 할 때다.

장석일 국민건강실천연대 상임대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무상의료#공약#의료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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