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누가 교수를 초딩으로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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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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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요즘 교수 사회에서 가장 화제인 투표는 다음 달 대통령 선거가 아니다. 명칭조차 생소한 ‘학술지 선호도 조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국내 학술지의 평판을 알아본다며 2일부터 16일까지 실시하고 있는 조사다. 도대체 어떻게 조사하기에 그 난리인 걸까?

국내 학회들은 학문 분야에 따라 다양한 학술지를 발간한다. 해외에서도 좋은 평판을 듣는 수준 높은 것도 있지만, 학회 회원조차 읽지 않는 부실한 것도 많다. 일부 학회지는 연구 성과나 예산이 없어서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교과부가 수준 미달인 학술지가 넘쳐 나는 걸 막겠다며 학술지에 대한 예산 지원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예고한 이유다. 교과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학술지 지원 제도 개선 방안의 핵심은 이렇다. 지금처럼 매년 1000여 건의 학술지에 평균 300만 원씩을 주는 대신, 2014년부터는 20개 정도만 엄선해 거액을 집중 지원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은 좋다. 문제는 극소수의 학술지를 추리는 방식이다. 지금까지는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의 양과 질을 참고해 평가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는 학계가 자율적으로 우수한 학술지를 고르도록 하겠다는 게 교과부의 구상이다. 수십 개의 학문 분야에서 수천 개의 학술지가 쏟아지는데 누가 무슨 수로 우수한 학술지를 고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학술지 선호도 조사다.

국내 학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진행해 온 이 조사는 친숙한 학술지, 활용도가 높은 학술지, 평판이 좋은 학술지, 선호하는 학술지를 각각 최대 10개까지 적어 넣도록 했다. ‘학계가 자율적으로 우수한 학회지를 고르는’ 방식이란다.

올해는 시범 실시지만 내년에는 이 조사 결과가 2014년 예산 지원과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 학회마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교수들을 상대로 대선 못지않은 표심 잡기가 벌어진다.

일선 교수들은 자기가 가입한 학회는 물론 전혀 무관한 학회로부터도 e메일과 전화 공세를 받고 있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연고도 없는 이공분야 학회로부터 ‘우리 학술지를 1등으로 꼽아 달라’라는 e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한 공대 교수는 “지난달부터 이런 내용으로 받은 e메일이 스무 통 정도 된다”라면서 “초등학생 반장 선거도 아니고 이게 뭐냐”라며 혀를 찼다. 일부 조교나 시간 강사는 지도 교수가 몸담은 학술지를 높은 순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학계 지인들에게 설문조사 독촉까지 하고 있다.

여러 학회들이 살포한 e메일의 문구를 들여다보면 더 민망해진다. ‘우리 학회지를 검색해서 최우선 순위로 써 달라’라는 읍소형은 기본이다. ‘이번에 우리 학회지를 뽑아 주시면 SCI(과학기술논문색인)급으로 발전시키겠다’라는 공약형도 있다. ‘이번 조사에서 결과가 나쁘면 비우수 학회지로 전락할 수 있다’라는 동정심 유발형도 많다.

연구로 승부를 걸어야 할 학술지에 대해 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투표를 한다면 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교과부는 이번 조사가 평가나 예산과는 연계되지 않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불량 학술지를 걸러 내고 우수 학술지를 육성하겠다는 정책 의도는 백번 옳다. 하지만 교수들의 수준을 초등학생처럼 떨어뜨리는 선별 방식은 문제가 있다. 교과부는 학술지 지원 제도 개편안을 학자들이 왜 탁상행정이라고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교수 사회#교육과학기술부#학술지 선호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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