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영호]검찰은 정치권력과의 선 긋기에 나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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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봄날에 날아든 충격적인 비보는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들었다.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충격에서 벗어났지만 그 여파가 오늘의 대선 판에까지 미치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검찰은 분위기에 눌려 수사를 엉거주춤 봉합하고 나서도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앞다퉈 개혁 대상으로 꼽는 동네북 신세다.

정치권, 인사 통한 검찰 길들이기

개혁의 주된 표적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다. 중수부가 정치검찰 선봉에 서서 정치권력의 입맛대로 칼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검찰의 자존심이요, 부패 척결의 중추를 자부하던 중수부였지만 이제 폐지나 무력화가 기정사실이 됐다. 1980년대 초 기구 출범 이래 지난 30년은 영욕이 교차한 가시밭길이었다. 욕을 먹을 때가 많았지만 뜨거운 박수를 받을 때도 있었다. 권력형 비리를 단죄하거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대형 사건에는 역시 중수부라야 한다는 여론에 등 떠밀려 수사에 나선 적도 있었다. 성원에 고무돼 숱한 밤을 꼬박 새우며 중수부를 지킨 검사들이 소위 특수통의 맥을 이었다. 그런 중수부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중수부는 숙명적으로 정치색이 강한 사건을 수사할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이나 고위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그 자체로 정치성을 띠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을 다루면서도 정치검찰 시비를 비켜가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정도(正道)를 걸으면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다. 다름 아니라 그런 사건에 엄격한 법률적 잣대를 들이대 정치색이 탈색된 형사사건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러려면 수사 착수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절차 진행에서는 답답하다고 할 만큼 원칙을 지켜야 한다. 수사의 초점이 오락가락해서도 안 되고, 절제된 행보에 머뭇거림이 없어야 한다.

중수부를 수렁에 빠뜨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누가 보더라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주된 혐의를 벗어나 억대의 시계를 받았느냐 같은 가십거리가 크게 부각된 것은 망신 주기로 비쳤다. 소환조사를 마치고도 처리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오랫동안 우왕좌왕한 것도 막후 흥정을 한다는 의심을 샀다. 수사 착수 과정도 투명하지 못했다. 친분 있는 기업인 한 사람에 대한 집중적인 세무조사에서 뇌물의 단서를 찾은 것이 표적수사 시비를 낳았다. 한마디로 정치색을 탈색시켜 형사사건화하는 데 실패했다.

중수부가 그런 정치적인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다 보니, 정치검찰 시비에 종종 휘말린 것이다. 승진에 목매거나 인사 혜택에 보답하겠다고 알아서 긴 경우가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언론의 부추김에 들떠 사건을 키우며 바람을 일으키는 데 신이 나 정치색을 탈색하는 데 소홀한 경우가 많았다. 때로 정치권에 휘둘렸다. 검찰의 중립을 말로는 떠들면서도 여당조차 정치적 계산에 따라 수사를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려 든다. 수사 과정에 자신들의 힘이 작용한 것처럼 은연중에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중수부, 제도 아닌 사람의 문제

중수부가 나섰던 문민정부 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도 정치권의 검찰 흔들기가 있었다. 야당 총재의 흠집 내기에 나선 여당이 언론을 통해 뇌물수수라는 형사사건으로 끌고 가는 검찰을 압박했다. 야당으로 흘러간 비자금 중 야당 총재가 실토한 20억 원 이외에 소위 ‘+α’까지 밝히라는 것이었다. 정쟁에 휘말리는 걸 우려한 검찰이 끝까지 중심을 잡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치검찰 시비가 생긴 것은 중수부 기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중수부를 이끈 사람 때문이라고 본다. 중수부를 없애 검찰과 정치권력의 유착을 깨겠다고 주장하는 측에 묻고 싶다. 정치검찰 시비가 끊이지 않은 것은 한직이냐 요직이냐 하는 칼자루를 쥐고 정치권력이 검찰을 길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원칙과 정도를 고집하는 검사보다 인맥 구축에 뛰어난 마당발 검사가 득세하도록 조장했기 때문이 아닌가.

검찰에 권고하고 싶다. 중수부의 무력화가 국민의 뜻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라고. 사람의 문제를 기구 폐지로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 하더라도 대세가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 외부의 힘에 의해 무장 해제를 당하는 치욕이 오히려 새로운 변화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차제에 최정예 인력이 포진한 중수부 수사에서 근래 무죄 선고율이 왜 높아졌는지, 눈치를 보느라 소환조사할 사람을 서면조사로 대체한 적은 없는지, 결과에 따라 사표를 낼 각오로 수사에 임했는데도 무죄가 났는지를 깊이 자성해 보길 바란다.

나아가 검사들이 일치단결해 정치권력과의 선 긋기에 나서야 한다. 정치검찰 논란에서 비켜나 있던 다수 검사들도 이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외부의 도움을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자정에 나서 정치권력에 길든 소위 정치검사가 요직에 앉는 걸 막아야 한다. 새 정부 출범의 대변혁기가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문영호 객원논설위원·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검찰#대선#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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