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로저 코언]美유권자 “사생활에 참견 마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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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가 던진 명확한 메시지는 개인의 성적 취향이나 동성결혼, 여성의 출산권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 유권자는 성폭행과 이에 따른 임신이 신의 뜻일 수 있다는 백인 남성 공화당원의 종교적 교리를 원치 않았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둘러싼 백인 남성들은 이제 21세기에 들어섰음을 깨달아야 한다.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은 동성결혼 문제로 복음주의적 유권자들을 동원해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패배시켰다. 이때만 해도 동성결혼 지지는 정치적 자멸행위로 보였다. 하지만 8년 뒤 오바마는 동성결혼을 지지했지만 승리했다. 경제가 좋지 않은 데도 말이다.

페이스북의 시대에서 롬니를 지지한다고 선언하는 것은 친구 리스트에서 삭제되는 가장 빠른 길이 됐다. 사회적 이슈가 아닌 경제 문제를 얘기한 것인데도 그렇다. 롬니에 대한 지지는 동성애 집단을 향한 개인적인 공격으로 간주됐다. 동시에 신세대를 향한 구세대의 용납할 수 없는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도 롬니는 해군력 증강 문제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번 패배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이 극우 보수적인 신념을 고수한다면 당분간 백악관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인구학적 변화는 명백하다. 오바마는 30대 이하 미국인 10명 중 6명의 지지를 받았다. 롬니 후보는 65세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이 빌 클린턴 정부 이전에 그랬듯이 지금은 공화당이 나라의 중심인 젊은 피를 무시하고 있다.

롬니 후보는 하버드대와 MIT 인근 도시에서 혁신을 가까이 두고 살았지만 구시대의 편협한 사회 종교적 관념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망쳤다. 공화당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롬니가 그런 신념을 공유했는지도 의문이다. 어찌됐든 그는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

사회적 이슈에선 진보적이지만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이들이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뿌리내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공화당은 이를 내버려두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이런 성향이지만 그에겐 전국적인 무대의 정치인이 되고픈 야망이 없어 보인다.

사회적 진보주의의 상승세는 지속될 것이다. 메인 주와 메릴랜드 주에선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위스콘신 주의 태미 볼드윈은 사상 첫 레즈비언 상원의원이 됐다. 미네소타 주에선 동성결혼 반대 법안이 부결됐다. 롬니 후보가 승리한 인디애나 주에선 성폭행에 따른 임신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던 리처드 머독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가 패배했다. 머독을 두둔했던 오하이오의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조시 맨덜도 낙선했다. “진짜 성폭행은 임신이 되지 않는다”던 토드 아킨 미주리 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도 패배했다. 공화당 백인 후보들의 이런 여성관에는 문제가 있다. 단지 정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매사추세츠의 민주당 상원의원 후보 엘리자베스 워런은 여성의 임금 평등권을 내세워 당선됐다.

공화당을 향한 메시지는 명확했다. 여성의 평등권, 출산과 성적 취향에 대한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패배한다는 것이다. 오바마에게 쏟아진 대규모의 라틴계 투표는 이민 문제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카지노 거물 셸던 아델슨 같은 사람에겐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교훈도 주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 뒤에는 사생활을 침해받기 싫어하는 오늘날 미국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안방일은 참견 말라’는 이런 선언은 국가적 승리이기도 하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미국 대선#오바마 재선#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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