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기환]국민 불안 키우는 오락가락 식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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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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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환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
박기환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
지난달 23일 언론보도로 야기된 식품원료에서의 벤조피렌 검출 및 안전성 논란, 관련 제품에 대한 회수 조치로 대한민국뿐 아니라 외국에서까지 문제가 되어 사회적 경제적으로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위해성 판단 과학적 검토없이 승복

국민의 건강 보호 및 증진을 위해 식품안전관리의 선진화를 지향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세계 수준의 시험검사 및 위해평가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식품안전 판단에 오류가 있을까봐 식품위생심의위원회나 식품안전평가위원회 등을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최종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 시스템에는 과학적 근거 등이 부족해 법적기준이 없는 위해 우려 물질에 대한 위해평가를 통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유해여부를 판단하는 합리적인 절차도 포함된다.

이번 일도 6월 벤조피렌의 초과 검출을 확인한 후 바로 추적 조사를 해 식품원료에서 벤조피렌 검출을 확인했다. 기준 규격이 없는 제품들이라 위해평가를 통해 식약청은 ‘해당 제품 섭취로 인한 벤조피렌 노출량은 안전한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려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24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감에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자, 식약청장은 “허용 기준치를 넘는 발암물질 벤조피렌이 든 원료를 사용해 만든 제품을 회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다”고 답변했다. 정치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식품의 안전관리에 대한 행정기관의 전문성과 자체 의사결정 시스템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식약청이 기존 조치와 배치되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기존 결정이 오류라는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승복하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동안 식품안전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국회 소비자단체 등 비전문기관의 비난에 대해 과학적인 재검토 과정 없이 승복하는 어이없는 태도를 또다시 반복한 것이다.

이로 인해 식품안전관리에 대한 식약청의 신뢰는 추락하고 국민의 불안감을 증대시켰으며, 대한민국의 국격을 손상시키고 국제적인 혼란을 초래했다. 문제가 된 제품의 원료를 제공한 2개 업체들에 행정처분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정서상이라는 명목으로 뒤늦게 원료가 들어간 제품까지 회수하는 것은 식품안전을 책임지는 전담기관으로서 일관되지 못한 처사다. 앞으로도 유사한 위해성 판단이 과학적인 근거 없는 여론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염려스러울 뿐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계획으로 내놓은 것이 새로운 기준 설정과 제도의 강화라고 한다. 이를테면 완제품에 대한 검사만 하는 게 아니라 제품에 들어간 원재료에 대한 검사까지 완제품 제조업자가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수입 식품과의 역차별이 생긴다. 농약이 잔류하는 농산물, 동물용 항생제가 잔류하는 축산물 같은 부적격 원료를 사용해 만든 수입 제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일관성 있는 식품행정 펼쳐야

식품과 관련된 이슈만 생기면 식약청은 무책임하게 규제를 늘릴 생각만 하니, 조만간 식품위생법에 의해 우리나라 식품산업 종사자는 전부 범법자가 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게다가 식품 기준은 제품 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규제하면 국내 식품산업의 발전 및 국가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수도 있다.

사고만 나면 언론과 국회, 소비자 단체의 무책임한 질타와 마구 쏟아내는 대책으로만 끝나는 식약청의 땜질식 대책은 식품에 대한 편향되고 왜곡된 시각을 조성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적으로 심각한 손실과 소모적인 논쟁만을 초래한다. 식약청은 과학적 평가에 근거해 일관성 있는 소통 행위와 전문적인 식품 행정을 펼쳐주길 바란다.

박기환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
#국민 불안#식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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