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신용카드發 신용불량자 양산, 제동 걸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3일 03시 00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내수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카드 모집인을 대폭 늘렸고 길거리에서 ‘묻지 마 모집’도 서슴지 않았다. 미성년자에게도 카드를 발급했다. 카드회사의 ‘고객 확대’ 명분 뒤에는 연체를 조장해 폭리에 가까운 연체수수료를 챙기려는 속셈도 있었다. 정책 실패와 카드회사들의 무절제로 초래된 2003년 카드대란의 충격은 쓰나미급이었다. 당시 35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量産)되고 카드 빚으로 인한 자살자가 속출했다.

정부가 그제 가처분소득이 월 50만 원에 못 미치거나 3장 이상의 카드로 대출한 다중채무자에게 카드 발급을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신용카드 발급 조건이 이처럼 대폭 강화된 것은 일부 카드 소지자들이 카드대출(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무분별하게 이용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보유한 신용카드 수는 4.7장으로 카드대란 직전인 2002년의 4.57장보다도 많다. 지난해 신규 발급된 신용카드 630만 장 가운데 30만 장은 결제능력 부족자 또는 다중채무자에게 발급됐다.

특히 신용등급 7등급 이하 등 신용이 낮은 계층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카드 부도율은 1∼6등급에서는 0.4%에 불과하지만 7∼10등급은 9.0%로 22배나 된다. 3장 이상의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는 사람의 59%가 7∼10등급에 속한다. 세계적인 금융완화로 저금리가 지속되자 자금 운용이 막힌 신용카드 회사들이 카드대출 경쟁을 벌였다. 그 결과 카드 결제 연체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은 2010년 13만6000명에서 지난해 17만6000명으로 늘었다. 신용카드가 남발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반등이라도 하면 카드대란이 재발할 수 있다.

무분별한 카드 발급은 대학생 신용불량자 양산의 주원인이다. 카드 남발은 한국 경제의 가장 무서운 복병인 가계부채가 900조 원을 넘어서게 만든 주요한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드 발급을 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수입이 기초생계비에 못 미치는 한계(限界)가계의 경우 카드대출이 끊어지면 금리가 더 높고 회수 방식이 악랄한 고리대(高利貸)로 내몰릴 수 있다. 이들이 고리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불법대출 근절, 서민금융 기회의 확대 등 병행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조장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도권 금융기관의 문턱을 낮추는 노력도 중요하다.
#신용카드#신용불량#다중채무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