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인규]‘법 앞에 우는 서민’ 지켜줄 후보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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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금태섭 변호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최측근으로 활약하고 있다. 어제는 안 원장 관련 기자회견으로 대선 정국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7년여 전 검사 시절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한 일간지에 게재하는 바람에 검찰을 떠나야 했다. 그 글에서 그는 “피의자로 조사를 받을 때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변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조언했다.

‘유능한 변호사’는 그림의 떡

보통 사람이 수사를 받는 것은 평생 가야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이다. 따라서 금 변호사는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투자해 유능한 변호사를 구하라고 충고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금 변호사가 외면한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대다수 서민은 유능한 변호사는 고사하고 무능한 변호사조차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동국대 법대 김도현 교수는 대법원의 사법연감에 기초해 2006년의 경우 국선(國選)변호인을 포함해 변호사의 조력을 받은 형사피고인의 비율이 41%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웃나라 일본의 비율은 98%다. 이처럼 형사피고인의 59%가 변호사를 못 구해 인권을 위협받는 현실에서 유능한 변호사를 구하라는 금 변호사의 충고가 서민에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민사소송의 ‘나 홀로 소송’ 비율은 2006년 82%로 형사소송의 59%보다 훨씬 더 높았다. 서민들은 형사상 인권뿐만 아니라 민사상의 권리도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흥행 돌풍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은 전직 대학교수다. 그리고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그러고도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게 당했다고 주장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변호사조차 선임할 수 없는 서민의 억울함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서민이 변호사를 못 구하는 가장 큰 이유는 비싼 수임료 때문이다. 수임료가 비싼 원인은 수요에 비해 변호사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로스쿨 졸업생 1500명이 배출되면서 사법연수원 출신 1000명과 합쳐 모두 2500명의 신규 변호사가 법조계로 진출했다. 김도현 교수는 이런 규모의 신규 변호사 배출이 20년 이상 지속돼야 적정 변호사 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2017년을 끝으로 사법시험이 사라지면 신규 변호사 수는 다시 1500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로스쿨 입학 정원을 늘려야 한다.

유럽식 법률비용 보험제도 필요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법적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변호사 증원과 더불어 법과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가해자에게 손해액의 몇 배를 물리는 징벌(懲罰)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유럽식 법률비용 보험제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법 제도가 이 두 가지 이슈를 외면하는 한 서민은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소송과 관련해 서민이 흘리는 눈물의 많은 부분은 부실한 법체계가 만들어낸 ‘법조(法造) 눈물’이다.

먼저, 징벌적 손해배상이 왜 필요한지부터 살펴보자. 입증 자료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순진한 채권자가 사기성이 농후한 채무자에게 걸려든 경우를 생각해보라. 아무리 명약관화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채권자가 100% 승소하기란 어렵다. 채무자가 전관(前官) 변호사라도 쓰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설령 승소하더라도 실제 손해액만 보상받으므로 채권자는 100% 보상을 포기한 채 억울한 합의로 내몰린다.

사회적 약자인 서민이나 중소기업이 대기업이나 은행과의 거래관계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채권·채무자 관계에 해당한다. 수출 중소기업들에 큰 피해를 안긴 은행의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관련 소송이 좋은 예다. 형사사건이긴 하지만 영화 ‘도가니’로 널리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에게 쉽게 합의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비슷하다. 이를 막으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선고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더라도 원고가 수임료 때문에 변호사를 구할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이 되기 쉽다. 서민이 감기에 걸렸을 때 쉽게 병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전 국민 건강보험 덕택이다. 마찬가지로 법률비용 보험이 도입되면 서민의 소액사건도 변호사의 조력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12월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여야의 대선 후보들은 온갖 장밋빛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법체계의 벽 때문에 우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나선 후보는 없다. ‘상식’을 강조하며 기성 정치인과의 차별화를 시도하는 안철수 원장도 마찬가지다. 어느 대선 후보가 서민과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줄 ‘법체계 개혁’을 약속할까? 그런 후보가 나타난다면 내 한 표를 기꺼이 바치겠다.

김인규 객원논설위원·한림대 교수 igkim@hallym.ac.kr
#금태섭 변호사#서민#유럽식 보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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