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희균]김군의 인권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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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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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지방 사립대 출신으로는 드물게 임원 문턱에 오른 김모 씨. 인사철만 되면 은근히 학연을 따지는 곳에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설움이 많았다. 상사와 팀원들이 출신 대학별로 모임이라도 하는 날이면 왕따가 된 듯한 속상함에 홀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런 김 씨는 정작 아들이 왕따인 걸 몰랐다. 외고 진학이 목표였던 아들은 2년 전 중3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고등학교에 안 가겠다고 했다. 맞벌이인 김 씨 부부는 아이가 2년 넘게 학원과 집 앞에서 집단 구타를 당해 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들은 처음 맞았을 때 담임교사에게 알렸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고 되레 가해 학생들의 보복만 심해졌다. 3학년이 되고는 아예 학교에 안 가는 날도 있었지만 담임은 집에 알리지 않았다.

가해 학생을 처벌해 달라는 김 씨의 말에 담임교사는 이렇게 답했단다. “A는 반에서 2등인데 장래를 망치면 되겠느냐”, “B는 어머니가 변호사라 가만있지 않을 거다”. 교사에게 또 상처를 받은 아들은 2학기부터 아예 학교에 안 나갔고, 끝내 고교에 가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 김 군은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다. 자기를 괴롭히던 A가 외고 교복을 입은 모습, 자신을 때렸던 B가 밝게 노는 모습을 마주쳐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경기, 강원, 전북 도교육청은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을 거부하고 있다. 낙인효과 때문이란다. 아직 어린 가해 학생들이 진학이나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 교육감들은 “인권에 반하고, 비교육적인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의 주장은 인권친화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 잠재적인 가해 학생들에겐 학교폭력을 저질러도 별문제가 안 된다는 인식만 심어준다. 폭력을 두려움 없이 휘두를 수 있는 면죄부를 준다. 반면 피해를 당한 학생들은 제대로 보호나 배상을 받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커진다. 세상을 부당한 곳으로 보게 된다. ‘비교육적’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해당 교육청이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석을 견강부회한 것도 문제다. 인권위는 학교폭력 사실을 기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가해 학생이 변했을 때는 사후심의 및 삭제 장치를 두라는 취지였다. 인권은 이런 건설적인 대안을 통해 지켜지는 것이다.

대입 수시모집 원서를 접수하고 있는 요즘 고3 교실에서 엉뚱한 피해자가 생겨날 판이다. 대학들은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학생부에 적지 않은 고교의 지원자에 대해선 학교폭력 가담 여부를 따로 조사할 방침이다. 무고한 지원자들이 일부 가해 학생과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가해 학생의 인권을 감싸느라 수많은 피해자, 또 학교폭력과 무관한 수험생들의 인권을 짓밟는 결과에 어떤 학생과 학부모가 수긍할 것인가. 김 씨는 “다 큰 어른인 내가 은근한 따돌림에도 괴로워하는데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아이들은 직접적인 폭력에 얼마나 상처를 받겠느냐”며 “학교폭력 피해자의 인권은 누가 보호해 주느냐”고 물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지난주 경기, 강원, 전북도교육청을 비판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나가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이다. 섬뜩하지만 불편한 진실이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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