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근혜 ‘화해 행보’, 야당은 폄훼할 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3일 03시 00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어제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김 전 대통령은 박 후보를 ‘독재자의 딸’ 같은 독한 말로 자주 비난했다. 박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만났다. 전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방문의 연장선상에 있는 화해의 행보다.

민주통합당 정성호 대변인은 “집권 여당의 대선후보로서 진정한 사과와 반성 없는 전격적인 방문은 보여 주기 식 대선 행보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렸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 긍정적 평가가 없지 않지만 부정적 반응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민주당도 역사적 화해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겐 5·16군사정변과 10월 유신 독재 시비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가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을 쌓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는 6·25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 성장사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과 북한 김일성 세습 왕조의 체제 경쟁도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 초에 남한의 우세로 반전됐다. 민주화도 산업화의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균형 있는 접근이 이뤄져야 미래의 청사진을 제대로 그릴 수 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도 공과(功過)를 아우르는 복안(複眼)적 사고가 요구된다. 박 후보에게도 ‘아버지의 딸’을 뛰어넘어 유신의 비민주성과 인권 유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박정희와 이승만 정권에 대해 거두절미하고 반(反)민주적 독재 정권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공부가 부족한 탓이다. 역사를 이런 단편적인 사관(史觀)으로 바라보면 역사로부터 얻는 교훈 가운데 많은 것을 놓칠 우려가 있다. 우리 민족이 걸어 온 길의 전체상을 설명할 수도 없다. 역사교육도 국가 생존과 발전이라는 측면에 큰 비중을 둬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젊은 세대도 5·16이 오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7년 대선을 2주 앞둔 12월 5일 경북 구미에 있는 박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참배했다. 평생의 정적(政敵)이었던 박 전 대통령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 것이다. 물론 영남 표를 얻기 위한 득표 전략이 담겨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박 후보의 행보에도 반대 세력을 아우르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화합의 노력은 국민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선거에선 상대의 장점을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공세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상대의 행적을 균형 있게 바라보면서 미래지향적으로 인물과 정책 경쟁을 벌이는 포지티브 전략이 중요하다. 그래야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중간층 유권자의 마음을 살 수 있다. 민주당은 15년 전 김 전 대통령이 던진 통합의 메시지를 새겨 보기 바란다.
#사설#박근혜#대선#김대중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