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정근]일본식 장기 불황 막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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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 아시아금융학회장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 아시아금융학회장
빚은 느는데 자산가격은 떨어지는 현상을 부채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부채 상환을 위해 경매 등 자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산가격이 더 하락하는 악순환도 발생한다. 자산가격 추가 하락 분위기가 형성되면 매수세는 자취를 감추어 거래조차 어려워진다. 가계는 소비 여력 감소로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은 순자산가치 하락으로 투자가 위축되어 경기는 침체한다.

한국도 집값급락-부채증가 ‘빨간불’

자산가격 하락과 부채 증가, 그 결과 초래되는 금융 부실과 재정 악화는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므로 장기간이 소요된다. 부채 디플레이션을 장기 침체나 공황의 전조로 해석하는 이유다. 전형적인 예가 대공황과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일본의 장기 불황이다.

일본의 경우 1986년 12월∼1991년 2월 장기 호황을 배경으로 자산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기업대출이 급증했다. 1987∼92년 5년 중 일본 은행들의 기업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73%에서 97%로 급증했는데 대개 부동산담보대출이었다. 그러나 증가하던 부동산 가격은 1991년 4월을 정점으로 하락으로 반전했다. 그 후 부동산 가격은 10여 년 동안 하락해 투자 위축과 금융 부실을 가속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국가부채도 증가해 GDP에 대한 국가부채 비율이 1991년 66%였으나 1997년에 106%로 100%를 돌파했다. 2011년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은 230%다.

결과는 경기침체였다. 1973년까지의 고성장기를 마감하고 1974년부터 중성장기에 들어간 일본 경제의 1974∼91년 평균 성장률이 4.1%였으나 1992년에 0.8%로 주저앉은 후 2011년까지 평균 0.75%의 장기 저성장을 지속해 기약 없는,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나. 그 중심에 부채 급증과 자산가격 하락이라는 부채 디플레이션이 자리하고 있고 그 결과 초래된 금융 부실, 재정 악화가 설상가상이 되었다.

한국은 어떤가.

2008년 말 725조 원이던 가계신용은 올해 3월 말 911조 원(GDP의 74%)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391조 원이다. 제2금융권의 기타 부동산담보대출도 129조 원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2008년 9월 102.09였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올 7월 97.11로 4년째 하락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20∼30% 하락한 예도 허다하다. 부채 디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율이 2∼3%대이므로 디플레이션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물가상승률만 보면 디플레이션이 아니다. 그러나 부채 디플레이션 문제를 얘기할 때 디플레이션은 자산 구입 시 빌렸던 빚과 비교한 순자산가치 하락과 금융부실 증가가 문제이므로 물가상승률이 아니라 자산가격 증감률을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동산값 회복과 일자리 창출 절실

다만 한국은 아직 은행의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한 부실여신) 비율이 3월 말 1.51%로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신용협동조합 3.7%, 상호저축은행 20.1% 등 제2금융권의 사정은 상당히 어렵다. 올해 들어 건설회사 부도가 줄을 잇고 집값 하락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초과되어 일시 상환해야 할 대출이 7조 원에 이르고 있다. 경계를 늦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여기에 지난해 말 국가부채가 774조 원으로 GDP의 62.5%에 이르고 있다. 사실상 정부 기능을 수행하는 공기업과 지방정부의 부채를 더하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도 일본을 따라간다. 우리 후손들에게 일본 같은 장기 불황의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부동산 가격 회복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과 가계부채 상환능력 제고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경제민주화 경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 아시아금융학회장
#일본식 장기 불황#디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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