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방열]‘역주행 한국농구’ 이대론 안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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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열 건동대 총장
방열 건동대 총장
19세기 포경선이 고래잡이로 대박을 치던 시절, 피쿼드호는 고래 ‘모비딕’에게 다리를 잃은 ‘에이하브’를 선장으로 삼아 항해에 나선다. 그는 주주들에게 투자의 결실을 가져다줘야 할 책임보다는 바다의 제왕 모비딕을 향한 복수심만을 품고 죽음의 항해를 강행한다. 망망대해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투는 광기에 사로잡힌 선장 에이하브와 무능한 선원들의 죽음, 이어지는 피쿼드호의 침몰로 끝이 난다.

아쉽게도 지금의 한국 농구는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2000년 이후 한국농구의 수장은 정치인의 몫이었다. 이들은 농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면서 ‘전용 농구코트 건설’, ‘농구아카데미 신설’, ‘신생팀 창단’, ‘농구 저변 확대’ 등 거창한 비전을 내세웠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 한국 농구가 처한 현실은 참담하다. 당장 국제대회 성적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1990년대만 해도 아시아 농구의 정상에 있던 한국 농구는 올해 런던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도 없게 됐다. 2004년 여자농구가 센다이 선수권대회 3위로 여농치욕(女籠恥辱)을 안겼고, 남자가 2009년 톈진 아시아대회에서 7위로 남농치욕(男籠恥辱)을 주더니 올해는 남녀 모두 런던 올림픽 예선에서 동반 탈락하는 한농치욕(韓籠恥辱)의 해로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대한농구협회의 무능’, ‘대표팀의 연습시간 부족’, ‘대표팀 구성 및 지도자 선출의 문제점’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대한농구협회(KBA)는 국제농구연맹(FIBA)이 국제기구의 일원으로 인정한 대표기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KBA의 대의 중 하나는 대한민국 농구의 국가 경쟁력 강화다. 남자 프로리그(KBL)와 여자 프로리그(WKBL)에 대한 KBA의 권리 행사는 중요한 문제다. 협회는 3월이면 모든 프로 경기를 종료하고 5월에는 대표팀 훈련이 시작되도록 일정 관리에 들어가야 하며, 전임감독 역시 항상 대기 상태를 갖추고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농구선수들의 국가대표 기피 현상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도적인 장치를 갖춰서 대처해야 할 것이다.

국제대회 유치에도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 1996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과 중국이 국제대회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는 것, 그 결과 우리나라가 1개 대회(2007년 인천대회)를 유치하는 동안 일본이 6개 대회, 중국이 무려 8개 대회를 유치한 사실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중·고교 농구, 특히 여자농구 저변 확대의 위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취업이 아닌 진학으로 숨통을 터 줘야 한다. 1970년대에는 취업을 위한 실업팀 활성화 정책이 주효했지만, 지금은 실업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적은 만큼 상황이 다르다. 중·고교 여자농구 선수들에게 대학 진학의 길을 열어 줌으로써 흔들리는 여자농구의 뿌리를 다잡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농구협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농구의 역사 역시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늦지 않았다. 반세기를 내다보는 치밀하고 현실적인 ‘한국농구발전 마스터플랜’을 마련해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간다면 피쿼드호의 침몰을 막을 수 있다. 한국농구의 영광은 모비딕을 잡으려는 선장의 힘으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농구인이 위기의식을 갖고 미몽에서 깨어날 때 가능하다.

방열 건동대 총장
#기고#방열#농구#한국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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