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상근]기자로 출발하는 S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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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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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교육복지부장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S 양, 오랜만의 소식이라 반갑군. 기자 시험에 붙어 연수 중이라니 더더욱. 안부 인사를 읽으면서 S 양이 미국 기자와 주고받은 메일이 생각났어. ‘엔리케의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2002년 9월과 10월에 실렸던 기사를 읽어보라고 내가 권한 게 계기였지.

씁쓸한 사진 조작-기사표절


그 기사는 엔리케라는 온두라스 소년이 미국에 밀입국한 엄마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뤘어. 다섯 살 때 엄마와 헤어진 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국경을 몰래 건너 11년 만에 미국에서 재회한다는 내용. 기사와 사진 모두 퓰리처상의 기획부문 수상작(2003년)으로 선정됐어. 모자가 불법이민자임을 고려해 취재진이 기사에 풀 네임을 밝히지 않았다고 내가 설명하자 S 양이 물었지. 두 사람을 보호한다면서 포옹하는 사진을 사용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문제여서 나는 기자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었지. S 양은 사진을 찍은 돈 바틀레티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고 했어. 나도 읽었지.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어. ‘풀 네임이 아니면 소년과 엄마가 당국에 추적당할 가능성이 낮다, 수만 명이 미국에 밀입국하니까 사진으로 이들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사진 촬영과 신문 게재에 가족이 반대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기자 지망생 중 시험을 준비하면서 퓰리처상 수상 기자와 메일을 주고받은 학생은 S 양이 유일했어. 일면식도 없는, 한국 여학생의 질문에 200자 원고지 6장 가깝게, 친절한 답변을 보낸 기자에게서 나도 깊은 인상을 받았었지.

나는 그 기자, 더 나아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제작 방침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어. 가명이 아니라 본명을 쓰면서 풀 네임을 밝히지 않은 점, 사진을 싣기 전에 당사자와 상의한 점은 사실에 충실하면서 취재원을 배려하는 모범적 사례라고 생각해. 최근 국내 언론에 불미스러운 일이 잇따라서인지 미국 언론의 제작 태도가 더 돋보이는군.

조선일보는 3년 전 사진을 하루 전에 찍은 듯이 게재했지. 한겨레신문은 이를 크게 비판했고. 이런 한겨레신문이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의 동생인 지만 씨 관련 기사를 베꼈다고 주간조선이 지적했네. 중앙일보 기자는 서울중앙지검 사무실에 9차례 몰래 들어가 문건 7건을 빼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방송도 마찬가지야. KBS 기자는 국회 민주당 당대표실을 도청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지난해 경찰 조사를 받았어. 노조가 170일간 파업을 벌이는 동안, MBC 일부 기자들은 출입처를 지키지 않고 집회장에서만 지냈네. 보도는 중단해도 취재는 계속했어야 하지 않을까.

언론의 기본적 덕목 지켜야


나는 이 모든 사례를 사실과 상식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 독자와 시청자에 대한 결례라고 봐. 동아일보가 비슷한 실수를 최근에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니야. 신문과 방송을 떠나, 이념과 논조를 떠나 언론의 기본적 덕목을 지켜야 한다는 거지.

여름이 지나면 현장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겠지. 수습 신분으로. S 양 말대로 기대도 되고 걱정도 많은 하루하루가 앞에 놓였군. 학생 땐 생각하지 못한, 예상치 않은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어. 그럴 때 해답을 구하려면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먹던 순간을 떠올리면 어떨까. 일기장이든, 메일이든, 미니홈피든 흔적을 찾아보기를.

기자가 되겠다고? 왜? 스스로에게 했던 다짐을 떠올려 보면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이 명확해질거야. 취재가 잘되지 않을 때, 유혹을 느낄 때, 부당한 지시를 받을 때. S 양에게 했던 조언과 당부를 나 역시 되새겨 볼 생각이야.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songmoon@donga.com
#오늘과 내일#송상근#기자#저널리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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