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정은의 북한, 변화인가 분칠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8일 03시 00분


북한 김정은이 그제 부인 이설주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유원지에 나타나 놀이기구를 타며 자유분방한 모습을 과시했다. 아버지 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렵던 파격적인 행보다. 칙칙한 흑백 사진 같던 아버지와는 스타일이 확연하게 다르다. 김정은이 10대 시절에 스위스에 유학한 경험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협동농장의 운영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새로운 경제관리체계 확립 방침’을 내놓은 것도 김정은 시대의 변화를 예고한다. 김정은은 올해 4월 첫 공개 연설에서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6·28방침’으로 불리는 새로운 경제관리체계는 북한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협동농장 분조(分組) 규모를 10∼25명에서 가족 규모인 4∼6명으로 축소하고, 생산물을 국가와 농장원이 7 대 3으로 나누되 초과 생산량은 농장원이 차지하고, 서비스와 무역 분야에서 개인자본의 투자를 합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베트남식’ ‘중국식’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의 튀는 행보가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회의적인 관측이 더 우세하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은 2002년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도입했지만 체제 유지의 근간인 계획경제와 수령경제를 포기하지 못해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현재 고립 수준이 2002년보다 훨씬 악화했기 때문에 6·28방침이 시행되더라도 성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북한 경제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외부 세계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대남(對南)정책도 김정일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일방적인 선전 선동을 담은 삐라 수만 장을 남한 쪽에 뿌렸다. 북한이 남쪽으로 삐라를 날려 보낸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북한 방송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표적지에 사격하는 장면을 4개월 만에 다시 방영했다. 적대적인 대외정책은 개혁개방과 양립할 수 없다.

북한이 식량·달러·에너지 부족 등 3대 난(難)을 해결하고 21세기 정상국가로 가려면 핵과 무력도발 포기를 통해 경제협력의 길부터 찾아야 한다. 김정은 이설주 부부의 활달한 행보가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주민의 고통과 유리된 분칠이 되고 말 것이다.
#김정은#이설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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