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현진]된장녀 밀어낸 ‘간장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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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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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산업부 기자
김현진 산업부 기자
이해선 CJ오쇼핑 대표는 5일 한중일 온라인쇼핑몰 대표들이 모인 ‘2012 아시아 온라인 쇼핑 비전’ 콘퍼런스에서 ‘간장녀’란 신조어를 인용했다. 한국의 홈쇼핑 시장 고객에 대해 “된장녀가 아닌 간장녀”라고 소개하는 대목에서였다. 참석자 가운데 외국인을 의식한 듯 그는 곧이어 “간장녀가 통역이 되냐”고 물어 청중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새로운 소비 계층을 지칭하기 위해 신조어 ‘간장녀(남)’를 만들었다. 지난달 관련 기사를 보도한 이후 ‘간장녀’는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본보 6월 15일자 B1면
된장녀 가고 간장녀 왔다

TV 퀴즈프로그램 문제로도 나오고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오르내리기도 했다. 간장녀(남)란 분수에 맞지 않게 자기과시적인 소비를 즐기는 ‘된장녀(남)’의 상대 개념으로, 실속을 중시하면서 발품과 정보력으로 남들보다 물건을 싸게 구입하는 실속파 ‘짠물’ 소비 계층이다.

소비자 접촉 빈도가 높은 유통, 서비스 업종에서 먼저 각종 ‘간장녀 마케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파리바게뜨 같은 외식, 식품 업체는 물론이고 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한 고급 유통 채널에서도 ‘간장녀’를 마케팅에 내세우고 있다. ‘간장녀’들은 소비를 합리적으로 할 뿐이지 무조건 지갑을 닫는 사람은 아니다. 즉, 외모를 꾸미거나 괜찮은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데는 여전히 관심이 많다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다 보니 경기 불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최장기·초특가 세일, 1+1 판매 등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기업들이 더욱 열광하는 듯하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최장기간 떨이 세일에 나선 현 상황이 이미지 관리 측면에선 좋을 리 없다”며 “젊고 유능한 이미지의 ‘간장녀’가 등장하면서 이들을 타깃 고객으로 유형화할 수 있었다”고 반가워했다. 이들을 공략한다고 밝히는 것이, 초특가만 찾아다니는 자린고비족을 타깃으로 하는 것보다는 ‘할인의 정당성’을 찾는 데 더 떳떳해 보이는 눈치다.

대한민국의 ‘간장녀’는 영어로는 ‘딜러 시크(dealer-chic)’쯤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다. 글로벌 트렌드정보사 트렌드워칭닷컴이 2012년 소비자 트렌드 중 하나로 제시한 ‘딜러 시크’는 할인 혜택을 찾고 가격을 흥정하는 것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여기게 된 세태를 뜻한다.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를 통해 제공되는 쿠폰 등 맞춤형 혜택을 적극 활용하고, 다른 소비자의 후기를 분석하는 소비 행태는 현명함을 넘어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명한 소비가 곧 능력이 된 셈이다.

한국에선 올 들어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판 ‘컨슈머리포트’를 선보이면서 주요 소비재의 가격과 품질 비교에 나선 것이 ‘간장녀’ 본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같은 제품을 국내에서 해외보다 더 비싸게 판다든지, 특정 제품의 가격이 품질 대비 높게 책정됐다든지 하는 문제에 ‘간장녀’들은 분노한다.

간장녀가 주도하는 2012년의 소비자 경제지도에서 허영심을 내세우는 ‘된장녀’는 무능력한 존재일 뿐이다. 또 그러한 ‘된장녀’를 타깃으로 한 기업의 마케팅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의 전략에 따라 소비 패턴의 변화가 이뤄지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이제 소비의 진화가 기업의 진화를 이끄는 시대다. 거대한 소비 문명 속에서 ‘간장녀’로 ‘숙성’된 성숙한 소비자의 마음을 사는 일.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과제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
#된장녀#간장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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