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수진]‘버럭’ 성질로 표를 얻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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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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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정치부 차장
조수진 정치부 차장
2008년 외교통상부에 출입할 때다. 외교부 고위 간부였던 A 대사는 기자들이 현안과 관련해 질문을 하면 고압적인 목소리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외교부 고위직인 내게 그런 하찮은 것을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공부 좀 하고 질문해라”…. 질문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심사인 듯했다.

기자는 A 대사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홍길동이 왜 집을 나간 줄 아십니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미가 불같은 그는 “당장 달려오라”고 기자를 불렀다. ‘초치(招致)’였다. “간담회를 하면 몰라도…”라며 사양했더니 간담회를 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그는 “하도 쓸데없는 걸 물으니 일에 방해가 된다”고 퍼붓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홍길동 얘기는 뭐냐”고 따졌다. 기자는 “기자는 궁금한 걸 묻고 따지는 게 일이다. 그런데 기자가 물을 때마다 ‘왜 물어보냐’고 하면 기자를 그만두라는 얘기 아니냐”고 반문했다. “여론의 1차 창구인 기자를 협박하는 게 외교부나 국가에 도움이 될까요”라고 묻기도 했다. A 대사는 사과했지만 이후에도 ‘버럭 성질’로 인해 종종 사고를 쳤다. 외교부에선 “도움이 안 된다”고 원망했다.

새삼 A 대사 생각이 난 건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때문이다. 그는 당대표로 선출되기 직전인 6월 5일 아침 생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화를 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유도 황당했다. “예상 질문이 아닌 질문을 한다”는 것. 아무리 성격이 불같다지만 이 일은 그가 국민을 어떻게 보는지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모바일투표를 통해 간신히 대표가 됐지만 ‘당심(黨心)’을 반영하는 대의원투표에서 진 것은 그런 성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 대표와 매우 가까운 문재인 상임고문도 최근 기자들에게 “이 대표가 고전한 이유 중 하나가 생방송 사고 때문이었다. 매우 잘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대표의 태도엔 변화가 없다. 그는 20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생방송 사고와 관련해 “누구라도 지위나 힘을 이용해 반칙을 하면 인정을 안 한다. 또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전화를 끊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인터뷰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진행된다면 관심 가질 국민이 어디 있을까. 미리 통보해온 질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송사고’를 쳐놓고도 여전히 으름장을 놓는 태도야말로 지위나 힘을 이용한 반칙이 아닐까.

이 대표의 최측근인 B 의원은 10여 년 전부터 “기자들 세 명 끌고 다니는 게 바퀴벌레 3000마리 끌고 다니는 것보다 어렵다”며 기자들의 자존심을 긁곤 했다. 다른 측근인 재선의 C 의원은 열린우리당 시절 동아일보의 ‘의원 전수조사’ 때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세 번 연달아 끊더니 네 번째 통화에선 “나는 매체를 가려 말한다”며 끊은 일이 있다. 독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전혀 접촉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9월 말 당 대선후보 선출 때까지 이 대표와 그의 참모들은 민주당의 ‘얼굴’이다. 그들이 치국(治國)을 부르짖기에 앞서 수신(修身)에 좀 더 힘을 쏟으면 좋겠다. 예의를 갖추면 집권을 못하나. B, C 의원의 실명을 쓰지 않은 건 더는 시달리기 귀찮아서다.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
#외교통상부#민주통합당#이해찬#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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