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퓰리즘 공약’ 남발했다 포기하는 일본 민주당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8일 03시 00분


일본 민주당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득표 전략으로 내걸었던 포퓰리즘 공약들을 대부분 포기하고 있다. 민주당은 2009년 총선에서 ‘소비세를 올리지 않겠다’는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의 공약을 앞세워 정권 교체를 실현했다. 하지만 무리한 소비세 동결은 한계에 이른 일본의 재정 상태를 더 악화시켰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국가신용 등급을 작년과 올해 잇달아 강등했다. 안팎의 압박에 견디다 못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선거 공약과는 반대로 소비세 인상에 힘을 쏟고 있다.

야당들은 민주당의 소비세 인상에 협조해주는 데 대한 반대급부로 복지 공약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고 민주당은 사실상 수용했다. 정권 창출의 핵심 공약이었던 무상의료제도 실시, 종합아동원 설립 등을 미루거나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작년 8월에는 자녀수당을 폐지했다. 민주당 소속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정치 생명을 걸고 천명한 ‘탈원자력발전 선언’도 무효화됐다. 가동이 전면 중단됐던 원전 일부가 7월부터 재가동에 들어간다.

민주당 정부의 주요 공약이 모두 뒤집힌 것은 공약 자체에 문제가 많았던 탓이다. 당장 유권자의 입맛에 맞춰 남발한 공약들은 처음부터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소비세 동결과 각종 복지 공약은 일본의 재정 위기를 더욱 가속시켰다. 탈원전은 국가에너지 전략에 대한 숙고 없이 쓰나미의 쇼크 속에서 나온 즉흥 정책이었다.

일본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를 극심한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이른바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4개국의 재정 파탄도 비슷한 맥락이다. 재정 사정을 외면한 정치권의 포퓰리즘 경쟁은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물려주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발표된 민주통합당의 복지 공약을 실천하려면 직간접 비용이 572조 원(연평균 114조 원), 새누리당 공약에는 281조 원(연평균 56조 원)이 들어간다고 한국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국민 1인당 연간 조세부담 증가분은 민주당 공약 120만∼355만 원, 새누리당 공약 109만∼123만 원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정책 연구기관인 일본총합연구소의 데라시마 지쓰로 이사장은 “한국도 천천히 일본식 쇠망의 길을 가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대중영합주의에 넘어가 표(票)를 주면 결국 유권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교훈을 일본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민주당#포퓰리즘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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