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원섭]‘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의 정통성 계승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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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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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원섭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
황원섭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
10일은 신흥무관학교가 개교한 지 101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당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애국선열들이 경술국치 다음 해인 1911년 6월 독립군 간부를 양성할 목적으로 중국 지린 성 류허 현 삼원보에서 신흥무관학교를 개교했다. 1920년 학교가 폐교될 때까지 10년 동안 독립군 지도자 3500명을 배출했다. 해외 항일투쟁의 최대 기지였고,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청산리대첩을 비롯한 대부분 독립전쟁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의열투쟁의 선봉 역할을 했다. 1940년 임시정부의 광복군 창설 당시 지청천, 이범석 장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휘관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 이후 광복군의 독립운동정신은 우리 국군의 호국정신으로 이어졌다.

신흥무관학교 101주년을 맞아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우리 국군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역사적 사실에 따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국군과 육군사관학교의 역사가 미 군정시대에 창설한 군사영어학교와 국방경비대, 그리고 경비대사관학교에서 시작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군사영어학교는 미 군정청에서 대부분의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 군인에게 미군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영어를 가르친 군사교육기관이었다. 만약 우리 국군의 역사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면 일본군이 우리 국군의 조상이며, 미군의 후예라는 논리가 성립될 우려가 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국군과 육군사관학교의 역사가 일본군 출신 원로들의 체면과 위상 때문에 왜곡됐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식민사관의 탈피와 역사적 정통성, 그리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왜곡된 국군의 역사를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수립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행 헌법의 근본정신으로 보아 우리나라가 임시정부의 법률과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그해 11월 국무회의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주축인 서간도의 군정서와 한민회를 임시정부 군사조직으로 편입했고 공보 제7호로 공포했다. 또 1940년 9월 광복군 창군식에서 조소앙 외교부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광복군은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이는 광복군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후 의병 투쟁과 신흥무관학교에서의 독립군 간부 양성, 봉오동·청산리대첩을 비롯한 독립군의 역사를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의병투쟁과 신흥무관학교, 독립군과 광복군은 당연히 우리 국군의 역사적 뿌리가 되어야 한다.

8·15 광복 이후 생존해 돌아온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신흥무관학교의 독립운동정신을 계승하여 새 시대를 이끌어갈 동량을 양성하고자 신흥대학교를 세웠다. 그러나 신흥대학교의 재단진이 교체되고 경희대학교로 개명되면서 신흥무관학교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민족사의 자랑스러운 진실이 한 개인의 이기적 공명심으로 말살되고 말았다.

이제 신흥무관학교의 개교 한 세기를 맞아 그동안 일부 친일인사의 아집과 식민사관의 그릇된 편견에 가려진 국군의 전통과 정체성은 독립운동사의 맥락과 헌법정신에 따라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 또 신흥무관학교의 전통과 신흥대학교의 진정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관계자들이 뜻을 모아야 한다.

황원섭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기고#황원섭#신흥무관학교#우당 이회영#신흥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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