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돈이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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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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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대한민국 0.001%인 재벌가에서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인간 군상을 묘사했다. 검찰에 불려간 재벌 3세가 금세 풀려나오는 등 몇몇 장면은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카메라가 으리으리한 집 안을 훑고 있을 때 영화관 뒷좌석에서 한 여자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어!” 파멸하거나 말거나 원 없이 돈맛을 보고 싶은 게 보통 사람의 마음 같다.

마이클 샌델의 시장만능 비판

‘돈이 공략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요새는 없다’는 유대 속담처럼 돈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만 한국인은 유독 돈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를 새해 인사말로 유행시킬 만큼 부(富)를 추구하면서도 돈에 대해 초연하거나 부자를 적대시해야 지성인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청년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삼성과 재벌 비판의 단골메뉴인 삼성이 같은 회사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임 감독이 돈이 왜곡시키는 인간성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동안에 한국인이 좋아하는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이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샌델 교수는 어제 연세대 강연에서 시장경제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샌델의 무료강연 티켓이 인터넷에서 장당 2만 원 안팎에 거래됐다고 하니, 욕망이 있는 곳에서 돈이 따르는 현실을 확인하게 된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비싼 입장권을 사면 줄을 서지 않고 놀이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미국 일부 교도소는 수감자들이 추가비용(1박 82달러)을 지불하면 호텔방이나 항공기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듯이 감방을 업그레이드시켜 준다. 일부 도시에서는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 혼자 승용차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돈을 내면 카풀차로로 달릴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코뿔소를 사냥할 권리는 15만 달러다. 이 돈으로 검은코뿔소를 번식 사육하는 데 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공공영역은 아직 돈으로부터 초연한 편이다. 반값 등록금을 줄지언정 기여입학제를 시행하자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여수엑스포에서도 비싸게 받고 전시관을 빨리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이 있을 법도 한데 국민 정서상 이런 제도는 용납되질 않는다. 이미 존재하던 예약제도 없애버리고 선착순 입장을 부활시켰다. 한 재벌이 출퇴근에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기 위해 중형버스를 구입해 타고 다닌다는 소식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정부 돈이 국민 도덕성 타락시켜

샌델 교수의 논점은 시장만능주의가 가져오는 도덕의 상실과 공동체의 파괴에 관한 것이다. 시장논리 없이 잘 굴러가던 영역에 일단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윤리는 타락하고 도덕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시장에는 시장만의 논리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교환 대상이 되면 생명 사랑 우정 등 인간 사회의 소중한 덕목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다.

그러나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것이 시장뿐인가. 올해 민간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시행되면서부터 가정에서 아이들을 잘 키우던 엄마들마저 혹시나 손해 볼세라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일부 어린이집은 보육료를 빼먹으면서 과도한 정부 규제에 불만을 폭발시키고 있다. 보육 수요 폭증으로 정부는 예산이 구멍 나 전전긍긍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엄마 품에서 자랄 수 있는 어린 아기들마저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아이들이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분명 돈은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주지만 우리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 간다. 그 돈을 시장이 아니라 정부가 뿌려대는 것이 우리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돈의 맛#샌델#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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