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효자는 잠꾸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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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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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국제부 기자
정양환 국제부 기자
얼마 전 첫아이의 백일이 지났다. 고생이 컸던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림책 한 권을 선물했다. 초보 엄마 아빠들에게 잘 알려진 ‘재워야 한다. 젠장, 재워야 한다’(원제 Go the fuck to sleep)였다.

“아이에겐 읽어주지 마라”는 소개가 달린 이 작품은 애덤 맨스바크란 미국인이 썼다. 출판 뒷얘기가 재미있다. 지난해 세 살배기 딸을 재우려다 뜻대로 안 돼 울컥한 작가는 페이스북에 “차기작 제목은 ‘Go the…’로 하겠다”고 올렸다. 반응은 엄청났다. 환호와 문의가 몰려들더니 나오기도 전에 아마존에서 예약 1위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눈물 날 뻔했다는 책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풀잎 사이 산들바람도 숨을 죽이고/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들쥐도 죽은 듯이 잠들었어./벌써 삼십팔 분이나 지났다고./이런 제기랄, 뭐라고?/그만 쫑알거리고 잠이나 자란 말이야.”

아이의 수면은 부모에게 지상과제다. 재우기가 얼마나 힘들면 생후 3개월쯤 된 애가 조금만 곤히 자도 ‘100일의 기적’이라 부를까. 한 후배는 그건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란다.

자녀의 꿈나라가 부모에게만 좋은 건 당연히 아니다. 미국수면재단이란 곳에선 어린이 건강을 위한 ‘적정 취침시간’을 발표한 바 있다. 3∼11개월 된 신생아는 하루 14∼15시간, 1∼3세 유아는 최소 12시간은 자는 게 좋단다. 초등학생이 돼도 10시간가량 수면을 취해야 성장발육에 도움이 된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에는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 연구진이 약 112년 동안 발표된 관련 논문을 검토했더니 아동 수면의 권고기준이 해마다 0.71분씩 감소했다는 거다.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1세기가 지나는 동안 1시간 20분가량 줄어든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애는 애일진대, 왜 지금은 덜 자도 되는 걸까.

의문을 풀기에 앞서 19세기 말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한 논문을 잠깐 들여다보자.

“…최근 아동의 수면 감소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잠이 부족한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특히 ‘가스등과 전차’의 급증이 수면을 방해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100년도 더 전의 일인데 낯설지 않다. 가스등과 전차를 TV, 인터넷 혹은 환경오염 지구온난화로 바꾸면 바로 요즘 얘기다. 아이가 안 자는 건 시대를 초월했던 모양이다. 마치 고대 그리스 벽화에 남겨졌다는 ‘요즘 애들 버릇없어’처럼.

충분한 잠은 성장기에 꼭 필요하다. 미 필라델피아대 수면연구소에 따르면 미성년자의 성장호르몬은 60% 이상이 잠자는 사이에 분비된다. 하지만 의사들이 권장하는 취침시간을 매일 규칙적으로 지키는 아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젠장, 재워야 한다’는 절규는 끝이 없지만, 안 따랐다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100년 전보다 1시간 이상 덜 자도 요즘 애들이 훨씬 덩치가 좋고 수명도 길다.

과학이 제시한 건 평균이지 잣대가 아니다. 조디 민델 수면연구소장은 “산술적 양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겐 저마다의 취침 스타일이 있단 소리다. 잠까지 남의 자식과 비교하진 말자. 세상 모든 아이는 특별하니까. 물론 잘 자는 게 효도지만, 쩝.

정양환 국제부 기자 ray@donga.com
#@뉴스룸#정양환#육아#아동 수면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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