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장영수]통진당, ‘진보’ 이름 부끄럽지 않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4·11총선의 최대 수혜자는 새누리당이 아닌 통합진보당이라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152석을 획득해 민주통합당과의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기존 의석을 유지하지 못했다. 반면에 통진당은 13석을 차지함으로써 5석에 그친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제3당으로 도약하는 성과를 보였다.

제1공화국 당시 진보당 사건으로 조봉암이 사형을 당하면서 진보당이 붕괴된 이래 진보를 내세운 정당은 많았으나 통진당처럼 지지와 기대를 모았던 정당은 없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었지만 급진적 주장과 과격한 행동으로 지지를 잃어 제18대 총선에서 5석에 그쳤던 점을 감안할 때 통진당의 출범은 진보세력의 활로를 모색하는 진지한 시도였으며 선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통진당의 성공 원인은 두 가지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기존 민노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진보정당들의 통합을 통해 희석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대 정당에 불만을 가진 국민이 제3의 대안으로 통진당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선거 결과 통진당이 246명을 선출하는 지역구에서 7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반면에 54명의 비례대표 의원 가운데 6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통진당에 대한 정당투표가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준다. 통진당의 지역구 후보자들 개개인보다는 정당 자체의 색깔과 정책에 대해 더 큰 지지와 신뢰를 보내는 국민이 많았던 셈이다.

부정 경선 갈등으로 정체성 혼란

그러나 선거 직후 비례대표 후보자 결정 과정에서의 부정선거 논란이 통진당 내부의 심각한 갈등으로 번지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부정선거 의혹을 둘러싼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통진당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통진당에 투표했던 국민 중에서 후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정당사를 돌이켜 보면 특정인을 중심으로 정당이 손쉽게 창당되고 해산됐던 부끄러운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 이른바 철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또한 많았다. 정당 수뇌부가 지역구 후보의 공천이나 비례대표 후보의 순번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번 통진당의 비례대표 순위 관련 부정 의혹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에서 ‘구태’를 재연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물론 옛 민노당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와 옛 국민참여당을 비롯한 비당권파 사이의 갈등이 문제의 발생 및 확대의 중요한 계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혁신과 통합’을 기치로 내세웠던 통진당이 지지층의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다.

‘진보’라는 이름에 걸맞은 참신하고 진보적인 행보를 기대한 국민도 있었다. 기득권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양대 정당의 한계를 벗어날 것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전 민노당과 같은 급진과 과격을 벗어나 합리적인 대안으로 승부하는 진보에 대한 갈망도 있었다. 그런데 작금의 사태는 자칭 진보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조차 구태에 매몰돼 있다는 인상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가 제대로 날기 위해서는 좌우의 날개가 모두 필요하듯이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안정과 혁신, 보수와 진보가 모두 필요하다. 다만, 그 전제는 보수다운 보수, 진보다운 진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보수라면 안정에 무게중심을 두되 변화와 혁신을 수용해야 하는 것처럼, 진정한 진보라면 올바른 방향으로의 점진적인 발전을 위한 노력 속에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최근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중산층이 붕괴되고,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 속에서 계층 간의 갈등, 이념 대립도 날카로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국민은 양대 정당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는 제3의 대안으로 통진당을 선택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국민이 처음 바랐던 것처럼 구태를 벗어난 참신한 정책, 그리고 이를 열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열의와 진지성을 기대했던 것이다.

문제 덮으면 진보 미래는 암울

통진당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도덕적 해이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면 과거 민노당이 위축됐던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 이상의 부정적 영향을 낳게 될 것이다. 진보세력의 정치적 역량 자체에 대한 불신이 증폭될 수도 있다. 도덕성을 결여한 진보세력이 과연 무엇을 국민 앞에 내세울 수 있을 것이며, 대안이 되지 못하는 진보에 국민이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통진당이 다시 서기 위해서는 정말로 진보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존의 부정을 덮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할 부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확실한 개선책을 내놓아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진보의 미래는 암울하다.

장영수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jamta@korea.ac.kr
#통합진보당#도덕적 해이#부정선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