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성하]‘죽이자’의 표적이 된 ‘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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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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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매년 전투를 열 번 정도는 기본으로 치러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 중세나 먼 나라가 아닌 서울에서 불과 수십 km 떨어진 북한의 이야기다.

전투는 항상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새해 아침 신문방송의 공동사설이 발표되면 곧바로 ‘모두가 신년공동사설 관철 전투에로!’라는 구호가 전국에 제시된다.

전투가 가장 많은 곳은 농촌이다. ‘농촌지원전투’ ‘밭갈이전투’ ‘모내기전투’ ‘김매기전투’ ‘풀베기전투’ ‘가을걷이전투’ 등 종류도 다양하다. 기차나 차로 북한 농촌을 지나가 본 사람들은 ‘모두가 모내기전투에로!’ ‘전당 전국 전민이 가을걷이전투에로!’라는 식의 구호표지판을 어디서나 보았을 것이다.

유엔 헌장은 소년병의 참전을 금지하지만 북한 전투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나도 북한에서 인민학교에 다니던 11세 때부터 파종 전투장에서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듯이 ‘영양단지(모를 기르기 위해 영양물질이 많이 섞인 흙으로 만든 흙덩이)’에 옥수수 씨앗을 하나하나 꽂아 넣었다. 지금도 북한 농촌에선 영양단지를 들것에 올려 실어 나르는 10대 초중반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제대로 돌아가는 공장 기업소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100일 전투’ ‘150일 전투’가 벌어진다. 학생들은 ‘학습도 전투’라는 구호 아래 공부해야 한다. 북한에선 심지어 김치를 담글 때조차 ‘김장전투’를 벌여야 하고, 아파트 건설장에도 ‘결사대’가 등장한다.

그러니 결혼할 때쯤이면 누구나 전투를 100번 이상 치러본 베테랑 전투원이 될 수밖에 없다. 전투가 매일 이어지니 난민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 벌써 2만3000명이 넘는 난민이 남쪽으로 피란해 왔다. 물론 남쪽의 삶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몇 년 산 탈북자는 “북한에서 여기서처럼 일했다면 아마 영웅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북한에 돌아간다면 “남쪽에선 소리 없이 ‘혈투’를 치르더라”라고 증언하지 않을까.

북한에선 민간에서도 ‘전투’와 ‘결사대’ 등의 군사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군인들은 ‘총폭탄’ ‘자폭정신’ 등 더 강도 높은 표현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민간인들에게 총이나 폭탄이 있을 리 만무하니 군으로선 괜찮은 아이디어다.

북한에 있을 때도 “이렇게 온갖 수식어를 다 동원하면 다음엔 어떤 용어를 써야 할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선전선동 전사들의 생존투쟁은 늘 상상을 뛰어넘는다.

몇 년 전 ‘우리의 하늘과 땅, 바다를 0.0001mm라도 침범하면 도발자들에게 무자비한 철추를 내릴 것이다’고 선포했을 땐, 소수점 아래 4자리까지 생각해낸 누군가의 창의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유행어 창작에 머리를 싸매는 남쪽 개그맨들에겐 훌륭한 본보기이다.

북한에선 요즘 남쪽을 겨냥한 ‘죽이자’ 시리즈가 한창이다. ‘쳐죽이자’ ‘찢어죽이자’ 정도는 양반. 평양 김일성광장을 비롯해 북한 전국이 ‘죽탕쳐버리자’ ‘칼탕쳐버리자’ ‘찢어말리워죽이자’ 등 수많은 ‘죽이자’ 파생단어들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엔 동아일보를 포함한 한국 언론들을 향해서도 ‘불이 번쩍 나게 초토화시켜 버리겠다’고 호언했다.

늘 전투만 벌이던 북한을 운 좋게도 벗어났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번엔 그만 북한의 전투표적이 돼버린 것이다. 시쳇말로 ‘헐∼’이다. 나는 전생에 전투 중 죽은 전사였나 보다. 어쩌다 보니 호칭마저 ‘주기자’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뉴스룸#주성하#주기자#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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