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채필]내가 사무실에서 사과나무를 키우는 까닭은?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나무를 사랑하는 소년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사과도 따먹곤 했습니다. (…) 소년은 어른이 되어 그 나무로 배를 만들어 떠났습니다. (…) 돌아왔을 때 그루터기를 내주며 쉬도록 했습니다. (…)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다.

나는 사무실에서 작은 사과나무 한 그루를 키운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소중한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며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연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세계개발원조총회를 주도하며 세계경제 질서를 함께 이끌어 가는 나라가 되었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는 기적이라고 한다.

이를 어찌 기적이라 할 수 있을까. 산업현장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역경을 헤쳐 온 분들이 있다.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더라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위해 기술과 실력을 아낌없이 바쳐왔기에 그분들은 영웅이다. 대한민국은 ‘2012년 근로자의 날 정부포상’에서 산업현장의 숨은 영웅 246분을 찾아 그 공(功)을 기렸다.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경창공업의 권숙광 씨는 중학교를 채 마치지 못하고 산업현장에서 주경야독하면서 금형분야 최고 전문기술인으로 우뚝 섰다. 그는 회사 일은 물론이고 대구기능대 강단에 서서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철탑훈장을 받은 한국공항의 김양님 씨는 재봉사로 일하다 명예 퇴직했다가, 항공기 기내 청소 업무로 재입사했다. 이것도 잠시, 외환위기로 또 일자리를 잃자 금녀(禁女)의 영역이던 항공운수장비 운전자로 전직해서 지금껏 산업현장을 지키고 있다. 나는 사과나무 앞에 서서 다짐한다. 숨은 영웅들이 대한민국에 뿌린 그 땀방울과 눈물을 결코 잊지 않겠노라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는 다짐에서다. 사과나무를 볼 때마다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화엄경의 가르침과 같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내딛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우리 사회가 양적으로는 꿈의 한계마저 넘어왔다지만, 이 과정에서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질적으로는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고용지표가 좋아지고 있다지만 피부에 와 닿진 않는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기 쉽지 않은 ‘부족한 일자리’와 일해도 잘살기 어렵다는 ‘근로 빈곤’의 문제가 있다. 이 이면에는 소수에게만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장시간 근로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일하는 사람 간의 격차가 크다는 노동시장의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분노는 공정하지 못하거나 과도한 격차에서 비롯된다. 이런 격차가 개선되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노동의 양과 질에 무관하게 수익성 높은 대기업과 노조 교섭력의 크기라는, 소속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구조 아래선 사회적 책무를 외면하는 정규직 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과소경쟁으로 경직성이 높아만 가고 비정규직 등은 과잉경쟁으로 안정성이 약해져만 간다. 좋은 일자리도 늘지 않아 구직자의 아픔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시대를 벗어나 3만 달러, 4만 달러의 시대로 도약하기 위해 더 나은 노동의 품질과 삶의 품격을 이루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래서 사과나무 앞에 또 서서 다짐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준 과실을 더 키워 아름다운 꽃향기도, 싱그러운 열매도, 튼튼한 가지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노라고.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많다. 5월 5일 어린이날, 5월 8일 어버이날도 그렇다. 그런데 왜 근로자의 날을 다른 기념일보다 앞선 5월 1일에 둔 것일까. 역사적 유래는 차치하고, 오순도순 한 가정의 행복을 가꾸어가기 위해선 ‘일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과 희망을 이어주는 게 ‘일’이라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한 것이라고.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