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상훈]무상의료 공약은 ‘쇼’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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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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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대한민국 국회가 맞아요? 국회의원은 응급사고 안 당한답니까? 국회의원과 그 가족들이 응급사고로 병원에 오면 받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국회의원들이 정쟁에 ‘다걸기(올인)’하느라 본회의도 열지 못한 24일 오후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의료계에 몸담고 있는 A 씨였다. 그는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는지 험한 말을 잔뜩 쏟아냈다. 흥분을 가라앉힌 뒤에도 그는 하소연하듯 말했다. “이러고도 무상의료를 논합니까? 정치인들이 그럴 자격이 있나요?”

A 씨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18대 국회에서 버림받을 위기에 놓이자 ‘꼭지’가 돌았단다. 이 법안은 중증외상센터 건립과 맞물려 한때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월 삼호주얼리 호 피랍사건을 계기로 열악한 의료 환경이 지적되면서 중증외상치료센터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치권에도 이견이 없어 사업은 순조로운 듯했다. 정부는 단계적으로 전국에 16개의 외상센터를 건립하기로 하고, 일단 올해 400억∼500억 원을 투입해 5곳의 문을 열기로 했다.

이 법안이 폐기되면 정부의 계획도 물거품이 된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성명을 내고 국회를 강력히 비판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몇몇 언론에서는 중증외상센터 확대를 주장해 온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분노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조금 늦추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법안이 폐기되면 자칫 대한민국 응급의료 시스템이 크게 후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응급의료 사업 예산은 모두 응급의료기금에서 나온다. 의료기관에서 거둔 과징금의 50%와 교통범칙금의 20%로 이 기금을 만든다. 연간 400억 원 내외지만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이 때문에 2009년 법을 개정해 과속차량 과태료 수입의 20%인 1600억 원을 응급의료 선진화 명목으로 기금에 할당했다.

문제는 지원 기간이 3년으로 제한됐다는 데 있다. 올해 12월이면 지원이 끝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1600억 원 지원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여야 합의로 지원 기간을 5년 연장하는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이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까지 올랐지만 약사법개정안과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발목이 잡혔다.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복지부는 내년부터 400억 원만으로 응급의료 사업을 해야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1곳을 짓는 데 80억 원, 연간 운영비로 30억 원씩 드는 외상센터는 당연히 중단이다. 취약지역 응급의료 사업, 미숙아 응급의료 지원 사업, 도서벽지 응급 헬기 사업, 낡은 응급의료시설 개보수 사업, 구급장비 및 구급차 교체 사업…. 이 모든 사업이 ‘올 스톱’될 수 있다. 응급의료기금에서 예산을 빼 쓰도록 한 법규정 때문에 다른 예산을 전용할 수도 없다.

19대 총선이 치러지기 전, 여당과 야당은 복지 공약을 쏟아냈다. 건강보험 혜택(보장성)을 90% 가까이로 올리겠다는 공약도 있었다. 100% 무상의료를 실현해야 한다는 공약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 공약들은 내동댕이쳐졌다. 공공의료 중 가장 1차적이며 중요한 응급의료마저 외면당하고 있잖은가. 결국 무상의료 공약은 ‘쇼’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행히 여야가 다음 달 초 본회의를 다시 연다니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 국회의원들이여, 이 법안은 민생법안이 아니라 ‘생명법안’이다. 더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쇼를 벌이지 말라.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무상의료#공약#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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