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동영]기차 삯은 누가 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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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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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정답은 승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뒤에 출발하는 열차 승객이나 차장, 혹은 기관사가 아니라 지금 열차를 탄 사람이다. ‘수익자부담 원칙’이라는 이 상식은 물건이나 시설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 사람이 그 비용을 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것 같은 이 원칙이 공공분야로 넘어가면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논란을 불러온 서울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발표를 봐도 그렇다. 민간사업자인 운영회사에서는 ‘더는 누적 적자를 참을 수 없어 계약대로 올리겠다’면서 6월 500원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원가 1288원(2011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행 요금수준(1050원)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서울시가 ‘일방적인 주장’이라며 사장 해임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놨고 언론에서도 ‘민간자본으로 지어진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요금 인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예산을 들이지 않고 수익자부담 원칙을 강조하면서 추진한 이 사업을 다시 예산으로 사들이자는 태평한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존재 가치를 아예 무시하듯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을 8.9%로 책정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어떤 분야에서든 요금이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소비자 처지에서 달갑지 않다. 하지만 필요한 시설을 제대로, 오래 쓰려면 이용하는 사람이 제값을 쳐줘야 한다.

지하철 문제만 놓고 보면 민간운영사인 9호선에서 반기를 들어서 그렇지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나 5∼8호선을 맡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도 내심 9호선을 응원하는 듯하다. 이들은 민간기업인 9호선과 달리 서울시 산하기관인지라 입바른 소리를 냈다가는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어 ‘상전’의 눈치를 심하게 봐야 할 처지다.

두 기관이 응원을 보낼 만한 배경이 있다. 두 기관 역시 9호선처럼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운행 때문에 최근 연간 2000억 원이 넘는 운영적자를 기록 중이다. 무임승차 범위는 늘고 쾌적한 실내 환경을 원하는 요구가 늘면서 신형 전동차를 사야 했고 안전을 위해 방화설비를 더 늘렸다. 자살을 막기 위해 역마다 스크린 도어를 대대적으로 설치했다. 서비스 질을 올려놓았지만 ‘상품 가격’은 이런 비용을 따라가지 못했다.

환승할인제가 적용되는 서울시 버스체계도 마찬가지다. 한 번 갈아탈 때 100원, 200원씩 깎아주느라 서울시가 들이는 예산은 연간 2000억 원이 넘는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대중교통 이용객이 제값을 내주지 않는 사이 이 부분에는 수천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거나, 그냥 장부상 적자로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필요한 시기에 적정한 금액을 올리지 않고 무작정 억누르며 ‘요금폭탄 돌리기’ 하는 결과는 지금의 9호선 논란처럼 어느 한순간 폭발하게 돼 있다. 아니면 10년, 20년 뒤에 태산 같은 빚더미를 뒷세대에게 물려주는 일밖에는 없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소비자인 시민의 깐깐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익숙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라도 껑충 뛰어오른 요금을 내고는 절대 이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특정일을 정해 온 시민이 이용 거부에 나설 만큼 똘똘 뭉쳐 대응해야 한다. 반대로 500원이 올라도 9호선을 탈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좀 더 나아가 다른 노선이나 버스도 그렇다면 지금 대중교통 요금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해야 한다.

‘기차 삯’은 지금 타는 사람이 내야지 다음 열차 탈 사람에게 ‘요금폭탄’으로 돌려 막을 일이 아니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뉴스룸#이동영#9호선#9호선 기습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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