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영해]국정원 ‘朴시장 상대 명예훼손訴’ 졌지만 대법, 국가의 소송제기 자격은 부정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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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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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대법원은 3월 29일 국가정보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시장의 언론제보 행위가 국가에 손해를 배상할 만큼 악의적인 공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박 시장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직하던 2009년 6월 모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희망제작소가 행정안전부와 3년에 걸쳐 하기로 한 사업이 1년 만에 해약 통보를 받고 하나은행과 합의한 소기업 후원 사업은 무산됐다”며 국정원의 사찰 및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국정원은 박 시장의 인터뷰가 국정원이 다른 국가기관이나 국민을 사찰한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며 대한민국을 원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국가가 명예훼손의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는지와 실제로 정보기관이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를 사찰하고 재정적 압박을 가하는지를 두고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대법원 판결 하루 전 박 시장은 승소를 자신하면서 KBS 새노조 파업방송인 ‘리셋 KBS 뉴스9’와의 인터뷰에서 “국가기관은 국민의 광범위한 비판과 감시 대상으로서 이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국가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 판결은 박 시장의 주간지 인터뷰 발언과 소송 과정에서 국가의 명예훼손 소송 자격을 부정하는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었다. 법원은 1심에서 박 시장(인터뷰 발언)의 근거가 부족하고 진위를 확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심은 박 시장의 발언으로 인해 국정원이 직무 범위를 넘어 다른 국가기관이나 국민을 사찰했다는 인상을 갖게 함으로써 국정원과 국가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을 인정했다. 또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나 악의적인 비방 등으로 명예훼손 피해를 당했을 때는 제한적으로 국가도 국민과 마찬가지로 소송 제기가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이런 1, 2심 판결 내용을 최종적으로 인정했다. 다만, 국민의 표현의 자유 위축과 소송 남발을 우려해 제보자나 언론매체의 명예훼손 행위가 감시, 비판, 견제라는 범위를 벗어나 악의적이고 경솔해 합리성을 잃어버린 경우로 제한했다. 박 시장의 인터뷰 내용은 사실관계를 떠나 공익적 사안으로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경우로 판단했다.

이런 법원의 판단에 비춰 볼 때 최근 논란이 되는 김미화 씨에 대한 국정원의 소송 제기는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박 시장에 대한 소송이 국정원의 압력 행사가 없는데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상황을 오도해 생긴 명예훼손 소송인 데 비해 김 씨의 소송은 김 씨 집에까지 국정원 직원이 찾아가 ‘사찰’했다고 허위 주장한 데 따른 것이라고 국정원은 주장한다.

김 씨와 국정원의 소송은 제보자 발언이나 언론매체 보도로 국가기관 특정 구성원의 명예훼손이 성립하느냐가 주요 쟁점이 될 수 있다. 정권의 민간인 사찰은 사라져야 할 역대 정권의 악습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찰 논란에 편승해 특정 국가기관을 공격하거나 개인의 일방적인 주장을 관철하려는 것 또한 부적절하기는 마찬가지다.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기고#권영해#박원순#사법기관#법원#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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