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영호]SD의 무모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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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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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주간동아팀장
윤영호 주간동아팀장
“뜬금없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최근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카드를 다시 꺼내든 데 대한 시장의 반응이다. 2010, 2011년에도 시도했으나 실패했던 과제를, 그것도 정권 말기에 들고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위로부터 인정받지 않고서는 늘 좌불안석인 우리 사회의 엘리트 관리들의 강박증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우리금융 매각 작업을 끝내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과거 조흥은행 매각도 김대중 정권 말기에 시작해서 노무현 정권에서 최종 마무리했으니 정권 말기인 지금이 바로 우리금융 매각 작업을 시작할 때”라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이미 “금융위가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으로 합병 방식을 유력하게 검토했고 후보로는 KB금융지주가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KB금융지주도 가능성은 열어놓은 상태라고 한다. KB금융지주는 그동안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불린 신한금융지주나 하나금융지주와 달리 뚜렷한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해 고민해 왔다.

김 위원장의 영문 이름은 ‘Kim Seok-Dong’이다. 그래서인지 금융권에선 SD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별칭과 같다. 영어로 바꿔 쓴 이름에 S자와 D자가 들어간 사람이 김 위원장뿐이겠는가. 그런데도 그가 SD로 불린다는 사실은 금융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이상득 의원이 이명박 정부에서 차지하는 위상 못지않다는 세간의 인식이 담겼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관(官)은 치(治)하려고 존재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라고 하니 ‘정치인 SD’보다 한술 더 뜬다고 하겠다.

그러나 취임 1년여 동안 그가 보여준 리더십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가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쳤던 가계부채나 저축은행 부실 문제는 여전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만약 연말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어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 관한 총체적 재조사를 한다면 김 위원장의 공과에 대해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하다. 이를 위해서라도 ‘저축은행 부실사건 백서’라도 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좁은 소견이나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의 합병도 결국 김 위원장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당장 합병으로 인한 인력 감축에 반발하는 노조를 달래야 한다. 또 합병 회사에 정부 지분이 남는 것을 피하기 힘든데 이 경우 금융당국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불신하는 KB지주 외국인 주주의 이탈도 막아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메카뱅크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부족한 것 같다. KB가 우리금융을 품게 된다면 자산규모 800조 원의 메가뱅크가 탄생한다. 메가뱅크는 여러 장점이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오히려 단점이 부각돼 왔다. 메가뱅크 한 곳만의 부실로도 금융 시스템 전체를 흔들어 곧바로 금융위기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아무래도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민영화 작업과 동시에 추진하다 보니 일이 틀어진 측면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한 정권에서 하나 성공하기도 어려운데 두 과제를 한꺼번에 달성하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민영화라는 보수주의의 가치를 실현할 능력이 없는 이 정부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 김 위원장은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고 가계부채 문제 하나만이라도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 바란다.

윤영호 주간동아팀장 youngho@donga.com
#광화문에서#윤영호#금융#우리금융지주#KB금융지주#메카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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