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진석]고교 ‘정치’과목 부활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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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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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석 부산대 교수·한국정치교육학회장
이진석 부산대 교수·한국정치교육학회장
청소년들의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불신이 날이 갈수록 깊어짐에 따라 민주주의 기반이 위태롭다. 청소년들이 존경하는 인물에서 정치인이 사라진 지 오래고, 정치적 신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얼마나 흥밋거리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정치인의 인기도가 결정된다. 청소년들은 기존 정치인보다 자기 또래 아이돌이나 다른 분야에서 자수성가한 비정치인에게 열광하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청소년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교육에 치중한 나머지 민주주의 소양을 기르는 정치교육을 등한시한 결과다.

인간은 태어나지만 시민은 만들어진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민의 지위도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좋은 시민의 자질도 일정 연령이 되면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느 국가건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가진 시민을 양성하는 체계적인 정치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미래세대를 육성하는 학교 정치교육은 주권자로서의 권리와 책무에 대해 가르침으로써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다.

따라서 학교 정치교육은 단순한 교육과정 또는 교과목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립 근거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학교 정치교육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정부의 독단적 판단이 아닌 입법부와 사법부를 포함한 국가 기관 및 국민 전체의 의견 수렴이 요구된다. 그런데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 정치교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고교 ‘정치’ 과목을 국회 등 관련 국가기관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폐지함으로써 단기적으로는 학교 정치교육의 위기, 장기적으로는 한국 정치 발전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교과부는 기존 ‘정치’ 과목을 ‘법과 사회’ 과목에 통폐합해 ‘법과 정치’라는 새로운 선택 과목을 내놨는데, 이 과목은 정치교육보다 법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더욱이 기존의 두 과목이 하나로 합쳐져 학업 부담이 과중해진 탓에 학생들의 기피 과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학교 정치교육의 위기를 가져올 교과부의 독단적 결정은 ‘정치’ 과목의 폐지뿐만이 아니다. 고교 1학년 ‘사회’ 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전환됨에 따라 학생들이 고교 과정에서 필수로 배웠던 정치교육 내용 또한 사라지게 됐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이 유권자가 되기까지 받는 정치교육은 사실상 중학교에서 끝난다. 교과부가 정치교육을 포기한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끝나는 정치교육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민주적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시민이 양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과부의 무지이며 중대한 정책 오류다. 어설프고 졸속적인 과목 폐지와 선택화로 청소년 정치교육과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민주주의 수호와 발전을 위해 학교 정치교육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시급히 요구된다. 이번 총선을 통해 새롭게 구성될 국회는 이념과 당파를 떠나 정치교육 활성화를 학교 교육의 기본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정치’ 과목을 고교에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민주시민 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과부가 정치 과목을 폐지하고 정치교육을 축소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나라가 정치 후진국에서 벗어나려면 학교 정치교육 활성화는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다. 새로 구성될 국회가 앞장서 고교 ‘정치’ 과목을 부활시키고 모든 학생이 이를 이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정치교육 공백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차제에 정치교육지원법을 제정해 우리 청소년들이 정치적 냉소와 불신을 극복하고 책임 있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진석 부산대 교수·한국정치교육학회장
#시론#이진석#고등학교#고교교과목#정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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