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수진]종군기자와 참전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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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정치부 차장
조수진 정치부 차장
“선거철 기자는 두 부류다. 종군(從軍)기자와 참전(參戰)기자다.”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02년 4월. 당시 이낙연 대변인(현 의원)의 촌평이다. 기자가 전쟁터에서 펜을 들고 취재만 하면 종군기자요, 전투에 직접 참가하면 참전기자가 되는데, 일부 기자들이 순수하게 취재만 하는 게 아니라 특정 후보 편을 든다는 점을 시니컬하게 꼬집은 것이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선 노무현 이인제 대통령 예비후보가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이 후보를 담당하는 이른바 ‘마크맨’ 5명이 노 후보와 식사를 함께하면서 노 후보가 “내가 집권하면 메이저(주요)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고 이 후보에게 낱낱이 전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노 후보 발언의 진위 논란이 컸지만 기자의 도덕성에도 역시 상처를 남겼다.

딱 10년 전의 ‘종군기자-참전기자’ 논란이 떠오른 것은 새누리당의 4·11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은 이상일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때문이다. 그는 20일 당선이 확실한 비례대표 8번을 배정받고 동시에 선대위 대변인에도 기용됐다.

언론인의 국회의원 출마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공적 영역인 지면(紙面)이나 토론회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편드는 모양새를 보여 왔다는 점이다. 그는 ‘김무성의 진가’라는 제목의 칼럼(3월 15일자)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백의종군’을 “김 의원의 결단은 총선구도를 바꾼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의 대항마로 새누리당이 낙점한 손수조 씨 공천을 다룬 칼럼(3월 8일자)에서는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선발전에 응모한 젊은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손 후보가 하기에 따라 기류는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이란 칼럼(2월 9일자)에서는 박 위원장이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것을 두고 “눈물은 슬픔의 말 없는 언어, 당을 위한 희생”이라고 치켜세웠다. 비례대표 발표 13일 전인 이달 7일엔 박 위원장을 검증하는 관훈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와 “썰렁 유머를 제법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하나 해달라”고 ‘지원성’ 질문을 하기도 했다.

지역구 출마 국회의원이 아닌 만큼 선거일 90일 전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공직선거법의 적용은 받지 않지만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이 발표되기 딱 하루 전인 19일 밤 신문사에 사직서를 낸 것 역시 분명 언론 윤리에 위배된다. 2004년 17대 총선(4월 15일)을 두 달여 앞둔 2월 3일, 문화일보 현직 정치부장이던 민병두 전 의원이 비례대표 안정 순번(18번)과 총선기획단장직을 약속받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을 때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전례도 없고, 도의에도 어긋난다”고 맹비난했지만 이 대변인 ‘덕분’에 민 전 의원 사례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 됐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 정치의 제1선에 위치한 정치부 기자들은 언론 윤리를 생각해봐야겠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지면이나 TV 화면을 참전의 장(場)으로 활용한다면 ‘언론의 중립성’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흔들릴 것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고서 외부 권력을 비판해서는 설득력과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조수진 정치부 차장 jin0619@donga.com
#종군기자#참전기자#총선#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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